[와! 카사노바] 가짜 미국 유학생 (4)
기사입력 2000년 04월 07일 14시 22분
윤명훈과 은이는 이렇게 만났다. 윤명훈은 채팅방에서 영어를 미끼로 은이를 낚은 것이다. 은이의 본명은 남은희(22). 모 대학 4학년이다.
둘은 쉽게 약속을 하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남은희는 윤명훈이 어떤 남자일까 궁금했는데 만나보니 `킹카'였다. 미국 유학생에, 준수한 외모에, 외제 승용차를 몰고 나온 부자집 아들이니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왕자'였다.
대화는 미국 유학 얘기로 시작됐다. 대학 4학년인 남은희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질 분야이기 때문에 남은희의 질문이 쏟아졌다.
"미국에선 대학원 진학이 복잡하다면서요?"
"대학원마다 모집시기와 시험방식이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입학 수개월전에 원서를 마감하는데 입학 난이도가 높은 대학원일수록 마감이 빠릅니다. 따라서 희망하는 대학원을 먼저 정해놓고 입학에 필요한 자격과 시험, 모집시기 등을 알아보는게 좋습니다."
"대학 편입학은 쉽다면서요?"
"한국보다 훨씬 쉬운 편입니다. 일류대학에서도 신학기와 중간학기에 편입생을 받아들이고 있지요. 재학중에 다른 학교로 편입하거나 휴학생과 자퇴생이 많기 때문이죠."
"편입할때 한국에서의 학점이 다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하던데요."
"한국 대학에서 받은 학점을 이수과목 설명서와 함께 제출해 심사를 받게 되는데 학점이 많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신입생으로 입학하기보다는 쉬운 편입니다."
마치 유학 상담하는 것 같았다. 윤명훈은 유학에 관해 좀 아는 편이다. 그는 고교를 졸업한뒤 친척이 운영하는 여행사에 들어갔는데 미국 출장길에 라스베가스에서 업무를 팽개친채 슬러트머신에 푹 빠졌다가 해고당했다. 그뒤 선배가 운영하는 유학원에서 잠시 일을 거들다 유학에 관한 상식을 얻은 것이다.
이를 까맣게 모르는 남은희는 윤명훈을 진짜 유학생으로 알고 계속 질문공세를 퍼부었고 윤명훈은 술술 대답했다.
둘은 카페를 나와 대학로를 걸었다.
"아버지께서는 사업을 하십니다.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제가 뒤늦게 유학을 가게 된 겁니다. 부모님은 결혼하라고 성화십니다. 이번 방학때 결혼상대자를 구해야 합니다. 함께 미국에 가서 공부할 여자를 찾고 있습니다."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걷는 이들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보였다. 소공원에서 젊은이들이 춤을 추며 공연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거리의 화가 앞에 앉아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시간 괜찮으세요?"
남은희는 시계를 들여다 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네"하고 대답했다.
"우리 저녁 먹으러 갑시다. 강남에 좋은 곳이 있어요."
둘은 윤명훈의 승용차를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부자집 아들의 외제 승용차에 탄 남은희는 마치 궁전에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잘만 하면 그 궁전의 안주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명훈의 승용차는 궁전같은 집으로 들어섰다. 종업원이 나와 차를 받아 주차시켜주고 다른 종업원이 안으로 안내했다. 깔끔한 실내에 구수한 철판구이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주방장 앞에 앉은 손님들이 주방장이 구워주는 메뉴를 나눠먹고 있었는데 외국인들이 많았다. 외국인 바이어들이 무역업자로부터 식사대접을 받는 모양이었다.
둘은 종업원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주문을 하자 주방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앙념통을 앞으로 돌리고 뒤로 돌리는 묘기를 연출하며 야채부터 굽기 시작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