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팁도 '주식거래'
기사입력 2000년 03월 28일 13시 24분
`룸살롱에 가면 경제가 보인다(?)'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룸살롱에 가면 돈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서울 강남의 고급 룸살롱 손님을 보면 특히 그렇다. 돈 잘 버는 사람들이 누군지 금세 파악된다.
요즘 최고의 VIP는 단연 벤처기업가들. 강남 룸살롱의 단골이자 큰손이다. 젊은 갑부들이 드나들면서, 돈을 물쓰듯 한다. 그 와중에 `떡고물'을 챙기는 행운아도 생긴다.
호스티스들은 제철 만났다. 신났다. `벤처특수'를 누리고 있다. 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풍속도다. 현금 대신 주식을 주고받은, A양에 관한 소문이 대표적인 예.
A양은 어느 날 한 벤처기업가로부터 팁으로 현금 대신 주식을 받았다. 처음엔 찜찜했지만, 때가 때인만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 주식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떡？ 이 주식이 곧바로 코스닥에 등록됐고, 주가가 수십 배 뛰어,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다. `떼돈'의 액수에 대해서는, 수천만원부터 수억원까지, 설이 엇갈린다.
이같은 소문에 대해 L마담은 "나도 그 얘기를 들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손님과 아가씨가 `특별한' 관계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고 말한다. 호스티스 사이에선 "돈방석에 앉으려면 이제 주식으로 받자" "그래도 현금이 최고다"라고, 팁에 관한 논쟁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A양의 사례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호스티스들이 주식투자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술자리에서 벤처기업가들로부터 정보를 전해 듣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번다는 것이다. 고급 룸살롱 호스티스의 `수준'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얘기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어쨌든 호스티스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진 것만은 확실하다.
L마담은 "요즘 아가씨들의 수입이 지난해보다 최소 2배 이상 좋아졌다"고 전한다. 10여년 전 부동산 갑부들이 강남 유흥가를 휩쓸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벤처기업가들은 베팅을 세게 한다. 2차비용이 보통 30만원선이지만, 퀸카인 경우 100만원도 가볍게 낸다"는 것이다.
호스티스 숫자도 급격히 늘었다.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들이 많은 게 특징. 또다른 L마담은 "세상 물정 모르는 10대들이 꼬임에 속아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들 때문에 고급 룸살롱의 수준이 자꾸 3류로 떨어진다"고 푸념한다.
벤처기업가와 룸살롱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보통 사람들은 허탈하다. 삶의 의욕이 꺾이고, 맥이 풀린다. 은행원 박영범대리(37)는 "벤처기업가의 모험심과 용기, 성공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임정식기자 da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