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원일씨 '그림 속 나의 인생' 펴내
기사입력 2000년 03월 26일 16시 55분
침묵이 화면을 압도한다. 쫓기듯 바빴던 직장에서 풀려난 남자는 집으로 돌아오자 더위에 지쳐 알몸으로 침대에 엎어진다. 침대에 걸터 앉은 아내는 터질듯 팽창한 욕망을 다스리며 심통 궂은 표정을 짓는다.
늦더위, 도시생활의 피곤과 권태가 녹아 있는 뉴욕 태생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의 여름'(오른쪽)이다.
소설가 김원일씨가 그림 해설을 통해 화가의 생애를 엿보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과 문학을 접목시키는 작업에 손 댔다. 50점의 그림에 해설을 단 `그림 속 나의 인생'(열림원)을 펴낸 것.
49년작 `도시의…'은 김씨가 95년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들렀을 때 맞닥뜨린 그림. 실소를 지으며 출판사에서 10년간 고되게 일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단다.
김씨는 작가답게 각 그림들을 주제 별로 분류해 소개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로트레크의 `아델 백작부인의 초상', 고갱의 `흰 말' 등은 `영원한 아름다움' 편으로 솎았고,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모네의 `임종을 맞은 카미유 모네',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등은 `삶의 흔적, 역사의 상처' 편에 뀄다. `도전과 파괴, 그리고 재창조' 편 액자에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로댕의 `발자크 상', 뒤샹의 `샘' 등을 걸었다.
미술가가 꿈이었다는 김씨. 그가 안내하는 `북 갤러리'를 다 둘러보고 나면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국내외 명화들도 감상하고, 경남 김해서 태어나 66년 문단에 데뷔, `마당 깊은 집' 등을 펴내며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받은 중견 소설가의 인생까지 덤으로 들여다보는….
[정경희 기자 gumn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