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 '무서운 후배 이홍렬'
기사입력 2000년 03월 24일 15시 01분
이경실이가 낄낄거리며 나한테 꼬깃꼬깃 접힌 신문쪼가리 한장을 건네주었다.
이경실과 나는 매주 월요일 방송국 촬영 대기실에서 만난다. KBS 2TV `체험 삶의 현장'에 공동 출연하기 때문이다. 장장 7년을 만났다.
우린 오빠 동생으로 사이가 매우 좋다. 7년 동안 단한번 말 다툼을 하거나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금실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오빠! 이거 읽어 봐."
이홍렬이가 무슨 신문인가 쓴 체험기 같은 것이었다.
단숨에 읽었다. 역시 내 얘기를 토대로 한 칼럼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영남이 형이 그림 한점을 준다고 한게 언젠데 여태 안주냐는 거며, 그럼 경실이 너는 받았느냐는 거였다.
"웃기는 시키!" 이런 얍삽한 수작으로 내 그림 한점을 강탈하려 하다니.
그러나 어쩌랴! 나는 이홍렬한테 그림 한점을 줘야한다. 무엇보다도 이경실한테 그림 한점을 줬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형평의 원칙 때문에 `이홍렬 시키'는 내 그림 한점을 먹게 됐다.
나는 돈 안받고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런 정책 때문인지 내 그림은 상당히 비싸졌다.
이경실이나 이홍렬 경우에는 돈주고 산다는 걸 꿈도 꿀 수 없는 실정이다.
이경실은 평소 "그런 화투쪼가리 그림 그냥 줘도 안받아!"하며 픽픽 댔는데 실제로 한점 줬을 때는 무지하게 좋아했다.
물론 명분이 있어서 줬다. 걔네 아들녀석 돌 기념으로 줬다. 자식을 또 낳으면 또 줘야하는데 더이상 자식을 안만들겠다고 선언해서 여간 다행이 아니다.
내달 4월에 부산 해운대 엑스갤러리에서 초대전을 마치고, 오는 10월에 불란서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현대미술축제(FAC)에 뽑혀가게 되면 내 그림은 자동으로 코스닥처럼 뛰게된다.
그냥 줄려면 무슨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홍렬한테는 사실상 명분이 있다.
작년에 미국 LA에서 내 그림 전시회가 열렸을 때 이홍렬은 오프닝 파티에 나와서 밤새 흥겨운 시간을 조성해 줬었다. 그거 한가지 만으로도 충분한 명분이다.
이홍렬을 LA에 두고 오면서 나는 고맙다는 인사말을 제대로 못 전했었다.
`아! 나쁜 선배!'
명분은 또 있다. 한창 최정상으로 잘 나갈 때 올 스탑하고 잠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식구들을 끌고가 타국의 문물을 익히고 돌아온 용감함도 그림 한점을 받을 만한 명분이다.
이홍렬은 한마디로 무서운 놈이다. 그런 바쁜 와중에 일본을 제압하고 이번엔 미국까지 정벌하고 돌아오질 않았는가.
봐라! 이홍렬이 얼마나 치밀한 녀석인가 말이다.
내 그림 한점을 입수하기 위해 일단 신문에 운을 뛰운다. 그리고 애꿎은 이경실을 사주해서 그 신문을 전달하게 한다. 그래서 신문 기사를 읽고 내가 그림 한점을 꼼짝없이 내놓게 만드는 거다.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다. 그럼 정면 돌파를 시도하자.
"홍렬아! 화투 그림도 있고, 바둑 그림도 있고 바구니 그림도 있다. 니가 와서 직접 골라라. 작년에 LA에선 정말 고마웠다."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