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19)
기사입력 2000년 03월 24일 14시 48분
"조선족 최삼동이라는 자가 열흘 째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자리에 앉으면서 손일태가 김경희를 바라보았다.
"이자는 남조선에서 2년간 있다가 돌아온 후로 남조선 관광객만 벗기는 강도질을 해왔다고 합니다."
"남조선에 다녀온 조선족들 대부분이 한국인에 대해서 적대감을 품게되지 . 이건 우리가 조선족들에게 50년간 해온 공작보다 더 효과가 있어."
쓴웃음을 지은 김경희가 말을 이었다.
"중국에 놀러온 놈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족 종업원에게 월급이 얼마냐고 묻고는 제놈 하루밤 술값의 팁값 밖에 안된다느니 하면서 수모를 준다. 더러운 국민성이야. 제 동족을 종 취급을 하다니."
"하지만 이대진이 같은 놈도 있지 않습니까？"
"그놈은 별종이야."
사무실 안의 벽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벽시계를 올려다본 손일태가 초조한 듯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지금쯤 최삼동이가 제 마누라를 만나겠는데요. 그놈만 잡으면 일의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릅니다."
최삼동이 이화원 근처에 있는 연청반점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아내 김정옥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뭐 시켜놓지 그랬나？"
빈 탁자를 내려다본 최삼동이 묻자 김정옥이 눈을 흘겼다. 그러나 반가움이 반은 섞여져서 눈매가 모나지는 않았다.
"돈이 있어야 시키지."
혀를 찬 최삼동이 종업원을 불러 김정옥이 좋아하는 만두와 국수를 시켰다.
"만두 둘이면 됐지. 국수까지 왜 시켜？"
30대 초반이었지만 김정옥의 얼굴은 기미와 주름에 덮여 10년도 더 나이들어 보였다. 단동 근처에서 농사를 짓던 최삼동에게 한국 바람이 분 것은 6년 전이었다.
그는 빚을 내어 한국행을 감행했는데 1년동안 성남의 가구공장에서 죽자하고 일했지만 월급을 반도 받지 못했다. 회사가 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법체류자가 되어 막노동을 하며 돈을 모으려고 했으나 약점을 이용한 고용인들은 제대로 월급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불법체류자로 고발을 하는 바람에 최삼동은 무일푼으로 귀환당했던 것이다. 그후로 최삼동은 철저한 반한주의자가 되었다.
단동에서 처자식을 이끌고 베이징으로 야반도주를 한 그는 한국인만을 골라 납치와 강도질을 전문으로 하는 장용수 조직의 핵심멤버가 된 것이다.
만두와 국수를 게눈 감추듯 먹은 김정옥이 그제야 자식 생각이 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용식이 한테 만두를 먹여주면 좋았을 걸."
"그건 가다가 사줘."
최삼동이 주머니에서 한뭉치의 돈을 꺼내 건네 주었다.
"3000 위안이야. 아껴써."
"장사가 잘 되었어？"
눈을 둥그렇게 뜬 김정옥이 돈을 받아 바지 주머니에 깊게 넣었다. 얼굴에 화색이 돌아 이제는 나이보다 다섯살 쯤만 많아보였다. 머리를 끄덕인 최삼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흘쯤 후면 한밑천 잡게 될 거야. 그땐 단동으로 돌아가 조그만 식당이나하자."
"5만 위안은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빚도 2만 위안이나 있고."
"그 정도는 준비 될거야."
놀란 김정옥이 더 물으려고 입을 벌렸다가 최삼동의 눈짓에 도로 다물었다. 김정옥도 최삼동이 무슨일을 하는 가를 알고있는 것이다. 김정옥과 식당 앞에서 헤어진 최삼동이 버스 정류장에 섰을 때였다.
양쪽 옆으로 두 사내가 다가가더니 하나가 팔을 끼었다.
"최삼동, 순순히 따라와."
사내의 팔 힘은 억세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