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호 '죽는날까지 무대에 서고싶다'
기사입력 2000년 03월 23일 13시 37분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허준호. 그는 `헝그리 정신'으로 최고의 스타의 오른 배우다.
겉으로 보기엔 터부해 보이면서도 속은 여린 그런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가난한 중．고등학교 시절 순전히 등록금 때문에 야구반에 들어가 배트를 휘두르면서 야구선수에가 되기 위한 꿈을 키웠다.
그러나 대학 진학때 무용과를 선택, 필드에서 힘껏 배트를 휘두르고 공을 뿌리는 야구선수에서 먼지 냄새가 자욱한 극장에서 관객을 향해 몸을 던지는 배우로 꿈을 바꿨다.
서울예대 무용과와 연극과 두 과를 졸업한 특이한 경력을 지니고 있는 그는, 지난 83년 `방황하는 별들'에서 대사도 노래도 없는 앙상블로 무대생활을 시작, 눈물젖은 빵을 씹으며 무대밥을 먹어왔다. 심지어 노래를 못한다고 연습실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뮤지컬을 하면서 하도 배가 고파 `돈을 벌어서 다시 돌아오겠다'며 무대를 박차고 나간 그는, 자신을 키워준 뮤지컬을 잊지 않고 무대에 서왔다. 그의 몸에 박힌 집념은 그를 스타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배우 데뷔 17년 만에 정상에 섰다. 지난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스포츠조선 주최,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것.
평소 야구와 농구 그리고 만화책 보기를 즐기는 허준호. 결코 2등은 하지 않는다는 오기와 집념으로 뮤지컬 무대에서 칼을 갈아온 그는 이제 우리 뮤지컬계의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등극했다.
소속극단 사람들이나 동료들이 인간성이 좋은 배우라고 말하는 허준호. 생긴것(?)과는 달리 `착한녀석'으로 불리는 헤로인 허준호를 만나 그의 일기장을 들여다봤다.
-유년시절은?
▲아버님(허장강)이 살아계실 땐 남부럽지 않게 살았죠. 지난 75년 아버님이 타계 하신 후로 어머님이 장사를 하시다가 실패한후 어렵게 살았어요. 사는 게 아니었죠. 정말이지 우리 가족에겐 무척 힘든 시절이었어요. 그런 시절이 오히려 저에게 배우근성을 키워준 것 같아요.
-야구를 한 이유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나?
▲그래요. 신일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야구를 하면 학비가 면제되기 때문에 야구를 했죠. 포지션은 1루수 였어요. 등록금 면제 받으려고 야구를 했으니 야구를 잘 할리가 없었어요. 타율도 시원찮았어요.(웃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12살때 돌아가셨어요. 인자하셨고 좋은 아버지였다는 기억이 가장 크게 남아있어요. 아버지는 항상 촬영과 영화일로 바쁘셨어요. 아버지와 목욕탕 한번 갈 수 없는 상황이 참 싫었어요.
-야구를 하다 서울예대 무용과에 들어갔는데?
▲그때 무용과는 체육특기자 혜택이 있었어요. 무용과에 입학, 졸업한후 다시 연극과에 들어 가 연극과를 졸업했죠. 배우는 안되겠다고 다짐했는데, 결국 배우의 길로 접어들게 됐어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시절은?
▲83년 입학하자 마자 대한민국무용제에 나갔어요. 행운이었죠. 김옥규교수님이 안무하신 `에밀레 에밀레'란 작품이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무용수로 데뷔한 이래 4∼5년 동안 20여편의 무용에 출연했죠. 연기자로서 기틀을 다진 시기였죠.
-연극데뷔는?
▲동랑청소년극단 창단멤버로 시작했어요. 그때 윤대성, 김우옥선생님이 `방황하는 별들' `이름없는 별들' 등 별 시리지를 만드셨어요. 청소년들의 좌절과 꿈을 그린 작품인데 그때 함께 작업한 김민수 주원성이 지금은 뮤지컬 스타가 됐어요. 영화는 86에 출연한 `블루 스케치'가 데뷔작입니다.
-군대생활은?
▲군 예술단에서 근무했어요. 1년에 160회 공연을 했는데 힘들었죠. 최민식 주원성 클론 홍록기 하강훈 등 지금은 쟁쟁한 스타들이 소속돼 있었죠. 그때 멤버들이 다시 모이면 근사한 뮤지컬 작품 하나 만들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죠. 어릴 땐 아버지였죠. 결혼한 후론 아내(탤런트 이하얀)와 딸(허민)이 가장 소중해요. 가족이 제일이에요. 어릴@때 아버지가 가족들과 시간을 못가져 속상했어요. 그래서 배우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점점 아버지처럼 돼가는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 늘 미안해요.
-뮤지컬 무대 본격데뷔는?
▲지난 90년 극단 광장의 `피핀'이에요. 이어 `캣츠'공연에 참가했죠. 노래가 없는 악마고양이 역을 맡았었죠.그러다 노래가 2곡 있는 사회자 고양이 역을 맡었어요. 저에겐 따로 와이레스 마이크를 지정해 주지 않아 제가 마이크를 찾아서 노래를 부르곤 했죠. 서러움도 컸어요.
-어려움이 컸을텐데?
▲음악감독이 노래를 못한다고 100원짜리 동전을 주면서 오락이나 하고 오라고 하더군요. 연습실에서 쫓겨난 셈이죠. 오락실엔 가지 못하고 밖에 나가 혼자사 노래연습을 하곤 했어요. `캣츠'는 3년 동안 공연했는데 배우들이 100만원씩 투자했어요. 저는 그 돈을 투자할 능력도 없었죠. 배당금은 물론 없었구요.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배우들도 3년공연하고 10만원씩 가져갔다고 하더군요.(웃음)
-효성이 지극하다고 하던데?
▲어머님이 너무 고생하셨어요. 아들이 배우한다고 다니면서 돈을 벌어오기는 커녕 용돈도 없어 쩔쩔 매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어요. 지금 제가 모시고 살아요. 고생하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캣츠' 공연 후 TV활동을 시작했는데?
▲너무 배가 고팠어요. 그래서 김효경(서울예대 교수,연출가)선생님께 돈벌어서 돌아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드라마에 얼굴을 내밀었어요. 처음 출연한 `걸어서 하늘까지'에서 소매치기로 나왔는데 대박이 터졌어요. 첫작품에서 성공, `엄마의 바다' `마지막 승부'등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인기밥'을 먹기 시작한거죠.
-돈은 얼마나 벌었나?
▲조금 모았죠. 전세집을 마련한 만큼요. 그런데 모 영화사에 출연확인서를 써 준게 문제가 됐어요. 송사에 시달렸죠. 그 사건 이후로 영화출연을 못하고 있어요.
-뮤지컬, 영화, 드라마에서 연기 차이가 있나?
▲배우면 그냥 배우인거죠. 장르별로 따지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늘 대사에 자신이 없었는데 방송에 출연하면서 화술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매체의 특성을 감안, 서로 보완적으로 응용하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돼요.
-바쁜 방송일정 속에서도 뮤지컬 무대를 떠나지 않는데?
▲어려웠던 시절, 같이 고생했던 친구들 생각하면 못 떠나겠어요.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끈끈한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 항상 남아 있어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같은 거죠. 항상 뮤지컬 출연하면서 욕심을 버리려고 해요. 개런티도 스타들이 조금 덜 가져가면 앙상블이 더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린이 뮤지컬에도 애정이 많은데?
▲물질적으로 불우이웃을 돕는다거나 할수는 없어요. 어린이들은 꿈우리의 이잖아요. 몸으로 때워서라도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 싶은거죠. 올 초 공연한 `사운드 오브 뮤직'도 같은 심정으로 출연한 작품이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일이죠. 배우로서의 일이 가장 소중해요. 전 항상 현장이 좋아요. 배우란 직업, 해볼만 한 거에요. 마지막, 끝까지 남는 사람이 진정항 연기자라고 생각해요, 윤복희 최불암 이순재선생님 같은 분이죠.
-왜 윤복희씨를 `엄마'라고 부르나?
▲대모 잖아요. 윤복희 선생님은 제 꿈이었죠. `캣츠'에 출연할 때 꿈에 그리던 스타와 한 무대에 선다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연습하면서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하는 생각도 했죠. 처음 만났을 때 "너 2세지"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러면서 2세 중엔 내가 대장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이후 엄마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 좋은 분이에요. 때론 야단도 맞아요. 98년 `라이프' 할때 엄청 혼났어요. 공연을 보신 후 분장실에 오셔서 한마디 말도 없이 노려보시기만 하더라구요. 무섭기까지 했어요.
-종교는?
▲없어요. 공연전 무대에서 기도할 때 모두들 `아멘'하면 저는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요. 종교는 없지만 기도하는 마음이 너무 좋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팬들에게 실망시키지 않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방송일 열심히 하면서 뮤지컬배우로서도 그 몫을 다하고 싶어요. 앞으로 공연할 `라이프' `산불' `시카코' 등에 출연할 계획이에요. 제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만큼 그 값을 하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배우 허준호1964년 4월 14일 ★…서울출생. 신일중．고, 서울예대 무용과@연극과 졸업. 이규형 감독의 영화 `블루 스케치'배우 로 데뷔. 영화 뮤지컬 드라마에서 활동. 뮤지컬 출연작은 `캣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베이비 베이비' `보물섬' `피터팬' `톰소여의 모험' `라이프' `갬블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