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벤처벨리 '생존게임' 몸살
기사입력 2000년 03월 22일 15시 36분
"벤처기업은 잘 되면 벤츠 타고 못 되면 벤치로 쫓겨난다."
"모 벤처기업 사장은 요즘 밤 잠을 설친다. 미국으로 도망 갈 궁리를 하느라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벤처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 벤처밸리에서 나도는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급격히 불어난 벤처기업 종사자들에게 남의 일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실제로 벤처 기업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부작용들로 인해 테헤란 벤처 밸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의 대표 유모씨(41)는 최근 투자이민 상담을 위해 미국 대사관을 찾았다.
모 기업가로부터 20억원대의 투자를 받았으나 2∼3년 안에 뚜렷한 성취도를 보일 자신이 없어지자 미국 지사를 설립하고 나스닥(NASDAQ)에 주식을 상장한다는 명분으로 도피처를 찾기 위해서다.
벤처기업들의 불안감은 당장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인터넷 관련 업체들 가운데 두드러진다.
부동산, 자동차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한 인터넷 업체들은 광고 수입으로 경영 비용을 충당하기 힘들다.
이들 벤처기업들중 살아남을 확률이 있는 곳은 그나마 웹이나 서버, 채팅 시스템 등 인터넷 관련 솔루션 개발에 노하우가 있거나 지식기반산업이 요구하는 기술력을 갖춘 극소수의 회사들 뿐이다.
인터넷 관련 벤처 기업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안 모씨(32)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기업에 투자하려는 자본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들 중에는 투자를 미끼로 경영권과 기술을 빼앗아가려는 `블랙 엔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또 전문경영인 위탁 체제로 운영되는 벤처기업들이 생겨나면서 이러한 위험도는 더욱 높아졌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컴퓨터 해킹이 늘어나면서 시스템 다운이나 정보 유출의 위험성마저 있어 이래저래 벤처기업들은 골치가 아프다.
벤처기업들은 투자유치를 받을때 화려한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벤처기업들이 제공하는 `스톡옵션'도 막상 코스닥에 상장 되고 현금화될 때까지는 의미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테헤란 벤처밸리에선 벤처기업들을 상대로 건물주의 동의없이 보증금과 시설비를 받아 잠적하는 부동산 사기꾼들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인터넷 벤처 업체의 한 임원은 "머니게임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는 등 가까스로 연명해가는 벤처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벤처기업 경영인과 투자자들의 현실적인 자구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경고했다.
[황수철 기자 suc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