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각의 제국' 24년만에 한국서 개봉
기사입력 2000년 03월 21일 15시 27분
76년 당시 `국민의 도덕적 정서를 해치는 음란물'이란 이유로 일본 법정
에 올랐던 `감각의 제국'이 24년만에 한국에서 개봉된다.
도쿄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엘리트 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60년대 일본 사회
에서 투쟁의 기치를 높이 든 학생 운동가였다. 성기 노출이나 성교 장면을
담은 영화의 제작 자체가 강력하게 금지되었던 70년대 일본에서 `감각의 제
국'은 기존 가치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나 마찬가지. 일본의 법망을 피하
기 위해 프랑스의 제작비로 일본에서 영화를 찍고 그대로 프랑스로 가져가
현상과 편집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감각의 제국'을 완성한 오시마 나기
사 감독은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일장기로 늙은 걸인의 성기를 건드리
거나 열심히 진군하는 군대와는 상관없이 둘만의 성에 탐닉하는 주인공들
의 모습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규범에 반기를 든다.
`감각의 제국'은 100분이 넘는 원본은 지금도 프랑스에서만 상영되고 있
을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으로 가득하다. 60대 늙은 게이샤와 키치(후지 타
츠야)의 정사, 사다(마츠다 에이코)가 자신의 체액을 묻힌 안주를 키치에
게 권하거나, 다른 게이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연덕스럽게 정사를 나누
는 등의 모습, 사디즘 마조히즘을 보여주는 화면이 이어진다.
이중 인터내셔널버전 91분에서 남녀의 성기가 노출된 장면이 5분 가량 삭
제된 86분짜리가 국내에서 상영된다. 이외에 마지막 정사신은 `안개 구
름'을 섞어 처리했다.
이 영화의 개봉 당시 전세계 영화계는 열화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76년 시카고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했으며 칸, 로카르노, 런던, 뉴욕
등 유명 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그렇다면 2000년 서울에서 `감각의 제국'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불과 몇달전 9시 뉴스를 장식하던 `거짓말'의 검찰 수사가 아직도 종결되
지 않는 지금, 이 영화를 또 다시 `충격적인 영화'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
다. 이제 국내 관객들도 웬만한 충격에 무뎌질 만큼 무뎌진 상황이므로 보
다 냉철하게 `영화 속의 성'을 보면서 `예술과 외설'을 판단할 수 있을 듯
싶다. (4월 1일, 서울 코아아트홀 허리우드)
[전상희 기자 fr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