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장외] 김응용감독 카리스마 어디갔나
기사입력 2000년 03월 19일 14시 10분
얼마전 모 방송의 토크쇼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1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세대별로 즐겨쓰는 유행어를 조사한 것이다. 그 중 30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유행어가 시선을 붙들어맸다.
"어∼ 종범이도 가고, 어∼ 동열이도 가고."
바로 `코끼리' 김응용 감독(59．해태)이 TV 인터뷰에서 남겼다는 코멘트다. 특유의 느릿느릿하고 어눌한 말투가 우습기도 하지만 그의 착잡한 심경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낸 말도 아마 없을 것 같다.
호랑이군단의 V9 신화를 창조했던 김감독이 몰락한 명문가를 이끌며 느끼는 회한과 좌절. 그리고 지난해말 거의 확정단계였던 삼성행마저 무산되는 바람에 그의 한숨섞인 하소연에선 이제 달관과 초탈의 냄새까지 풍긴다. 선동열 이종범 이강철 임창용 등 기라성 같은 최고의 스타들을 거느렸던 김감독의 추상같던 기상은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요사이 인구에 회자되는 양준혁의 트레이드설만 봐도 그렇다. 예전 같았으면 펄쩍 뛰며 "가당찮은 소리"로 치부했을 만도 하다. 하지만 최근들어 "선수의 트레이드는 구단의 고유권한"이라며 아예 신경쓰고 싶지 않는다는 투다.
물론 "현금 트레이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피력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구단이 현금 트레이드를 결정한다면 내가 거스를 수 있겠느냐'는 완곡한 수용의사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불같은 정열과 고집스런 집념으로 해태의 전성시대를 이끌던 코끼리의 카리스마가 그리워진다.
[광주＝류성옥 기자 watchdo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