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박용오 총재 '야구장이든 회사든 신바람 나야죠'
기사입력 2000년 03월 16일 13시 56분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100년 기업의 총수이자, KBO 총재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한국인 중 한명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지난 65년 두산상사에 평사원으로 입사, 30년을 그룹내 각 계열사에서 근무하면서 실무를 다졌으며 뉴욕대 총장을 비롯한 미국의 학계와 재계에 많은 지기를 만들고 국내사업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룹 총수직을 맡았다.
박회장은 90년대 초,중반에 구조조정을 시작, 두산이 21세기 선진기업으로 가는 발판을 닦은 선견지명으로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었다. 또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위임하고 오너는 자본투자자로서 활동해야한다"는 새로운 오너쉽 정립작업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박회장은 행동실천형의 인물. 사무실에 앉아서 업무를 지시하기 보다, 현장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리고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경영에 반영한다. 상,하간의 정보를 가능한 빠른 시간안에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박회장은 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프로야구 기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역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21세기엔 팬들로 부터 더욱 사랑받는 프로야구가 되기 위해 시설확대 등을 통한 팬서비스 강화, 스포츠마케팅을 통한 구단의 흑자경영 등을 위해 발벗고 뛰겠다고 말한다.
활달한 성격에 미식가로도 유명한 박회장은 국내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저렴하고 맛잇는 음식점을 많이 알고 있어 누구든지 박회장과 식사 약속이 되면 별미를 즐기는 것으로도 소문이 나 있다. 또한 열렬한 스포츠광으로 틈만나면 야구장로 달려가며 스키와 골프(핸디12)를 즐긴다.
마음씨 좋은 맏형같은 너그러운 분위기의 의리파이자, 사업가로서는 철저한 승부근성을 지닌 박회장을 서울 새명소 `두타'에서 만나봤다.
-소주는 그린, 맥주는 OB만 드시나요?
▲하하(웃음) 술은 맥주가 좋아요. 그중에 OB라거가 최곱니다. 개인적으로는 칼로리가 적은 카프리를 좋아해요. 금년들어 카프리, OB라거, 카스맥주 등 선택의 폭이 넓어졌어요.
-특유의 친화력이 돋보이는데 그 비결은?
▲과찬이에요. 인생살이는 솔직담백해야 합니다. 기업경영인은 그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해요. 솔선수범의 자세가 조직 구성원들에게 `하면된다'는 비젼을 제시하며 그런 분위기 속에 무한한 아이디어가 창출됩니다.번득이는 아이디어는 조직의 활성화에 달려 있어요. 우선적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중요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신용이죠. 가장 소중한 덕목입니다. 신용없는 사람, 기업은 일시적으로 화려할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오래가지 못해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겠어요. 현장경영, 지식경영, 사이버 경영도 시대에 따라 필요하지만 역시 신용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천금을 얻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외향적 성격에 미식가로 알려졌는데 특히 좋아하는 음식은?
▲맥주장사하면서 고급요리보다는 이곳 저곳 싸고 맛있는 음식점을 많이 알게 됐죠. 미식가라면 저희 형님(박용곤 명예회장)이 한수 위 입니다. 미식가가 되려면 요리를 만들줄 알아야하는데 명예회장께선 요리도 잘 하시거든요. 저도 TV의 요리강좌를 재밌게 보기도 하니 일단 미식가 범주에 든다고 할순 있겠죠. 한때는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즐겼어요. 집사람이 아주 좋아했죠. 미식가라면 요리를 만들 줄 알고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
-이번 주말에 갈만한 별미집 하나 소개해 주시죠?
▲우리 주위에는 값은 저렴하면서도 제대로 된 맛을 내는 음식점이 많아요. 그런 집이 별미집이죠. 제가 아는 집도 여러곳 있지만 인터넷 시대이니 별미집 정보를 2000개 가까이 담고 있는 사이트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어요. 한국 음식명가 `ob@green'에 들어가면 신뢰할 수 있는 음식점이 즐비합니다. 저도 가끔 이 사이트에 들러 별미집을 찾습니다.
-유년시절 이야기 좀 해주세요?
▲집안에 선친께서 승마하실 때 쓰던 말 채찍이 여러개 있었어요. 자녀교육이 엄격해서 우리형제는 모두 종아리를 맞으면서 컸어요. 물론 장남인 형님이 가장 많이 종아리를 걷었죠. 학교에서 시험답안지를 받으면 반드시 아버님께 보여드려야 했는데 틀린 것이 있으면 이유 불문하고 야단을 맞았어요, 항상 엄격한 것은 아니어서 여름에는 수영,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시는 자상함도 갖고 계셨죠.
-첫사랑은 언제 쯤?
▲좀 늦은편일 겁니다, 아마(웃음). 유학시절 만난 아내(최금숙)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입니다. 아내와 결혼키로 마음을 굳힌 다음 선친께 서신으로 그간의 사연을 고했죠. 선친께선 연애결혼을 반대하셨어요. 형수와 계수도 있는데 동서 간의 화합을 문제삼으신 거죠. 그러나 제 뜻대로 됐어요. 62년 9월 15일 뉴욕주 포우킵시의 성공회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죠. 어쩔수 없이 서울의 가족들은 신분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고, 그랜드 호텔에서 결혼 피로연을 했어요.
-유학시절 기억에 남는 일은?
▲1958년 3월에 유학을 떠났죠. 뉴욕대에 입학, 무역학을 전공했는데 교수님이 셰익스피어를 읽고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과제를 주었어요. 혼쭐이 났어요, 영어 표현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어요. 영어를 사용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도 많았어요.
-마음을 움직인 책은? 그리고 직장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해외출장때 기내에서 주로 봅니다. 경영자와 사원이 e@메일로 무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디지털 마인드라고 주장한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는 시대를 간파하는 혜안입니다. 사원에서 회장까지 빠른 정보의 공유 그것이 경쟁력 입니다. 최근에는 김용옥 교수의 `노자와 21세기'란 비디오 테입을 구해서 보고 있어요. 고전이 주는 삶의 지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원들에겐 소프트뱅크사 손정의씨의 `21세기 경영전략'과 Evan I. Schwartz의 `웹의 경제학'을 추천하고 싶어요.
-인생좌표는?
▲이제 매출로 경쟁하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제가 두산회장으로 있는 한 두산을 이익순위 10번째 기업안에 들어가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오른뺨, 왼뺨에서 뺨 때린 사람의 손까지 주물러 주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가슴에 항상 담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여행과 사진촬영 등 각종 취미활동을 마음껏 해보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하는 분은(영향을 미친 사람)?
▲선친입니다. 64년 미국에서 돌아와 선친의 @뜻에 따라 한달동안 한문 공부를 하고 65년 두산상사에 출근했어요. 선친은 첫째로 남과 똑같이 근무해라, 둘째로 네 전공인 무역을 키우도록 해라, 세째 직원과 인화를 도모하라고 주문했어요. 직원들과 점심을 해도 대금은 저더러 지불하라고 했지요.
-영화나 뮤지컬은 가끔 보러가시나요? 기억에 남는 영화나 뮤지컬은?
▲사실 영화나 뮤지컬을 좋아하지만 시가닝 나지 않아요. 집에서 비디오로 외국의 유명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가끔보기는 합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영화 `대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입니다.
-경영 스타일은?
▲현장경영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어요.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지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신바람 나는 조직풍토를 만들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100년 기업 두산의 새로운 100년 구상은?
▲두산은 산업재 산업으로 변신합니다. 지난 5년 동안 구조조정을 마무리,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았어요. 1위 업종만 살아남는 다는 대원칙 아래 생명공학사업, 전자사업의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고 시대흐름인
E-Biz 사업에 적극동참할 생각입니다.
-두산그룹의 1등 사원은 어떤 인간형인가?
▲돈 많이 벌어주는 사원이죠(웃음) 긍지를 갖고 모든 일에 전문가적이고 열정적이며 긍정적인 자세로 사고하며 행동하는 사원이 1등사원이라고 생각해요.
-동대문 신사옥을 중심으로 `두타문화'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는데?
▲동대문은 조부께서 구한말 박승직상점으로 문을 연후 최초의 활동 근거지였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기업이 탄생한 곳이지요. 그곳이 현재는 `두타족'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젊음이 있는 쇼핑몰과 문화공간으로서 서울의 새명소가 되었다고 해요.이제 두타라는 단어를 모르면 N세대가 아니라고까지 얘기할 정도하고 하더군요.
-스포츠광인데, 좋아하는 종목은?
▲조깅부터 구기까지 모든 스포츠를 좋아해요. 단 축구는 해본 적이 없어요. 체력관리를 위해 77년 부터 매일 아침 5㎞씩 조깅을 해요. 그동안 뛴거리가 2만㎞는 족히 될겁니다. 두산의 뿌리인 박승직상점은 1941년에 사내서클로 야구부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 이후 야구를 좋아했지요. 그리고 젊었을때 시작한 스키와 골프를 좋아하지만 업무가 많아 전처럼 즐기지를 못합니다.
-새천년 한국 프로야구가 발전하기 위해 실현해야될 가장 중요한 것 세가지만 지적하신다면?
▲첫째는 구단의 흑자경영으로 각 구단은 미국과 일본의 선진 프로야구단을 벤치마킹해 KBO를 주축으로 하여 투자와 프로모션을 강화해야 합니다. 둘째로 구단의 증설입니다. 4500만 인구에 8개구단은 다소 적은 느낌입니다. 지역연고제를 도시연고제로 전환, 지자체와 맞물리는 프로야구단으로 팬 확보가 중요합니다. 세째로 야구장 증설로 종합레저타운형의 야구장 건설은 팬확보와 흑자경영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기업인으로서 주주가치를 극대화시키고 KBO총재로서는 신명나는 프로야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용재 문화부장 eastse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