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10)

기사입력 2000년 03월 14일 15시 21분


박장호가 들어서자 노정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가 박장호를 찾았던 것이다.

"사건 알고 계시지요? 인터내셔널 호텔 말입니다."

"압니다."

털썩 앞자리에 앉은 박장호가 셔츠 윗단추를 풀며 말했다.

"공안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궁금해요."

"그런데 같이 온 남자 이대진이 말인데 그자는 아직 호텔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노정수의 말에 박장호가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

"그래요? 노영사는 그걸 어떻게 압니까?"

"공안국에서 조금 전에 전화가 왔거든요. 행방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아시게 되었군."

"그 여자도 추방 당하기 전에 나한테 항의를 하더군요. 성깔이 대단한 여자였어요."

불쾌한 듯 이맛살을 찌푸린 노정수가 말을 이었다.

"현지 사정을 무시하고 영웅심에 들떠서 난리를 치니 이거야 원."

"어쨌든 노영사가 바라는 대로 되었지 않습니까? 공안이 대신 처리해준 셈이네."

그러자 노정수가 정색했다.

"그 여자가 서울에 도착하면 국정원에서 입은 막아 주실거죠? 부대사님이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외교부 입막아주는 부서요?"

"이 일이 터지면 그쪽도 조용하진 못할 테니까요. 안그렇습니까?"

"본부에서 결정하겠지요."

"그나저나 이 작자는 혼자서 어딜갔지?"

노정수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이대진마저 보내고 싶다는 눈치를 보였다. 그가 힐끗 박장호를 보았다.

"국정원에서도 알고 계시지요? 그자가 지난달에 대만으로 군수품 전자장비를 팔려다가 중국대사관의 항의를 받았던 인물입니다. 중국대사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지요."

"조금 시끄러운 작자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중국대사관에서 그자의 신상명세를 공안국에 넘겼겠지요. 그래서 이번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뭐, 우리가 손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일이 되는군 그래."

벽시계를 올려다본 박장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3시 40분이었다.

"난 테니스 치기로 약속이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이대진이는 별일 없겠지요?"

노정수가 확인하듯 물었으므로 박장호는 눈을 크게 떠 보였다.

"별일 이라니? 어떤 일 말입니까?"

"호텔로 돌아올까요?"

"난 또."

쓴웃음을 지은 박장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무사히 돌아와서 추방 당하겠지요. 별일 없을 겁니다."

노정수가 물었던 별일은 이대진이 추방 당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 것이었다.

대사관을 나온 박장호는 번화한 거리를 마치 관광객처럼 스름스름 걸었다. 한무리의 한국인 관광객이 떠들썩하게 지껄이며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저녁때면 아가씨들이 괜찮은 가라오케로 몰려갈 것이다. 향수가게 앞을 지나던 박장호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곧장 가게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섰다.

꼭 구매충동을 일으킨 관광객같은 동작이었다. 그는 가게 옆쪽에 붙은 공중전화로 다가가더니 동전을 넣고 재빠르게 다이얼을 눌렀다.

그러자 신호가 두번 울리고나서 이대진의 응답소리가 들렸다. 문쪽을 향하고 선 박장호가 빠르게 말했다.

"정보는 내부에서 샜소. 공한한테 정보를 준 것은 우리쪽인 것 같소."

이대진은 가만 있었고 박장호가 말을 이었다.

"외교부의 안동성 과장은 어제 오후에 갑자기 대기발령을 받았습니다. 내가 조금 전에 확인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