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조국과 동포 (9)
기사입력 2000년 03월 13일 13시 28분
"내가 왜 추방당해요? 이 사람들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정현희가 소리치듯 묻자 노정수의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공안국에 끌려가 고생하고나서 추방 당할 겁니까? 그자들은 없는 이유도 만들어 낼 수가 있단 말이요."
"댁이 이자들한테 무슨일이냐고 항의해줘야 하는거 아녜요? 이자들은 나한테 이유도 밝히지 않는단 말예요."
"아직 이쪽 사정을 모르시는 모양인데, 그만해도 다행이란 말이요. 추방하기로 결정되었다면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요."
노정수의 목소리도 화난 듯 높아졌다.
"좋아요. 그 공안을 바꿔주시오."
몸을 돌린 정현희가 전화기를 공안에게 내밀었다. 뒤쪽에 서 있던 공안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더니 짧은 중국어로 대답 했는데 통화는 몇마디로 끝이났다. 공안이 전화기를 거칠게 건네주었을 때 정현희는 이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노정수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상부 지시라 이유를 말할 수 없답니다. 그 공안들이 댁을 공항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1시반 출발 대한항공을 예약까지 해 놓았답니다."
"우리 보스는 어떻게 되죠?"
마침내 정현희는 그렇게 물었다. 아까부터 입 안에만 맴돌고 있었던 말이었다. 만일 이대진의 이름을 꺼내었다가 연루시키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그, 탈북자 문제 때문이죠?"
정현희가 확인하듯 물었으나 노정수의 대답은 싸늘했다.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정현희는 이를 악물고 짐을 쌌다. 시간이 조금 흐르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면서 김경희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 년밖에 없다. 그년이 북한 당국자를 시켜 중국측에 협조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지난번에도 중국은 유엔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시킨 전력이 있는 것이다.
"개새끼들."
옷가지를 트렁크에 꾹꾹 밀어 넣으면서 정현희가 욕을 했다. 공안들은 가만히 서 있었고 종업원이 거들어주려는 듯 다가섰다가 정현희의 사나운 눈빛을 받고 추춤했다.
정현희는 누구에게 인지도 스스로 모르면서 다시 욕했다.
"병신같은 새끼들."
핸드폰을 귀에 붙인 채 눈을 치켜뜬 박장호가 짧게 대답만 하더니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심상치 않은 기색이어서 이대진은 긴장했다.
패스트푸드 가게 안이었고 그는 이야기 도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이다.
"정현희씨가 공안한테 끌려 갔는데요, 호텔 측에 알아보니까 공항으로 데려갔다는 겁니다. 추방당한 거죠."
놀란 이대진이 와락 상체를 굽혔다.
"추방이 확실합니까?"
"호텔에 심어놓은 정보원의 말이니 신빙성은 있습니다만. 조금 전에 가방까지 챙겨서 공안하고 같이 떠났다는 데요."
"그럼 이 일 때문이겠군요."
"틀림없습니다. 김경희가 중국 당국에 협조 요청을 한거지요."
"추방이라면 안심인데."
상체를 편 이대진이 말하자 박장호가 눈을 껌벅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쨌든 무사히 돌아갈 것 아닙니까?"
"공안이 이형도 기다리고 있을 거요. 이제 끝났어. 완전히."
길게 숨을 뱉은 박장호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재빠른 행동이야, 먼저 방해물부터 제거하려는 모양이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