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묘사로 시청자 감성 자극 KBS 'TV문학관'
기사입력 2000년 03월 07일 14시 43분
`영동선의 고향마을의 문곡역에는 석우의 첫사랑 옥순의 추억과 함께 아내 아진의 무덤이 있다. 석우는 어느날 아들 또래의 신입 기관사와 고향으로 가는 기관차를 몰면서 아련한 과거로 빠져든다.'
5일 방영된 KBS 창사특집 `TV 문학관@길은 그리움을 부른다'(연출 장기오)는 평생을 철로위에서 보낸 기관사의 삶을 수채화처럼 담아 오랜만에 시청자들의 묵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손색이 없었다.
30년 근속 화물차 기관사인 석우(박진성)가 두 여인 옥순(김혜리) 아진(송채환)과 살아온 엇갈린 인생을 잔잔하게 묘사해 눈길을 붙들었다.
18세때부터 탄광촌 막장을 드나들다 군제대후 고향을 떠나 기관사가 된 석우, 첫사랑 석우의 아들을 남겨둔채 끝없는 미래에의 꿈을 쫓아 미국으로 떠난 옥순, 술집 작부출신으로 자신이 낳은 딸과 옥순이 낳은 아들을 키우다 병사한 아진.
드라마는 이들 세 사람의 얽히고 @힌 실타래같은 삶을 한꺼풀씩 벗겨내며 찡한 감동으로 우리에게 와 닿는다
주인공들은 철길위의 기차처럼 더 넓고 풍요로운 세상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리지만 마음의 안식처는 늘 고향같은 제자리다.
이미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단숨에 시선을 끄는 극적 장치는 없다. 대신 "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한다"는 주인공 석우의 독백처럼 조바심 내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리면 어느새 극중 인물의 한 사람으로 빠져들게 하는데는 한다.
붉은 태양과 검은 대지가 하나로 이어지는 가운데 화면가득 담겨진 석우와 옥순의 두샷은 빼어난 영상미의 압권으로 꼽을 만했다.
더벅머리 청년부터 50대 후반 노역까지 소화해낸 박진성이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는 옥순과 깨끗한 영혼을 가진 작부출신의 아진 역을 매끄럽게 연기한 김혜리 송채환은 연기파다운 면모를 실감나게 했다.
[강일홍 기자 e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