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강우석 레디고 '부엉이가 주는 사랑의 메세지'
기사입력 2000년 03월 06일 15시 10분
나는 인생을 논할 때 `동물의 왕국'을 예로 드는 습관이 있다.
본 칼럼을 통해 이미 언급한 적이 있지만, `동물의 왕국'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처럼 나름대로의 질서와 치열한 생존게임이 있다.
지난달에 나는 TV예고편을 보다가 `꼭 보겠다'고 찍어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아메리칸 필름 마켓에 참가하고 돌아오는 바람에 시청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방송국에 구입요청을 해서 기어코 그 프로그램을 보고야 말았다.
박수용 PD가 7년간에 걸쳐 만든 `EBS 특집 자연 다큐멘터리－수리부엉이'였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너무나 신기하고 경이로워 한동안 사색에 잠겼다.
암수 한쌍의 수리부엉이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였다. 수컷은 사냥이란 임무를 맡고 있었고, 암컷은 마치 `여염집 여인네'처럼 몸치장으로 소일을 하다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어대곤 했다.
수컷은 암컷을 먹이기 위해 밤새도록 돌아다니며 쥐 또는 쥐만한 크기의 먹이를 물어와서 암컷에게 바쳤다. 마치 샐러리맨이 월급 타서 봉투째 갖다 바치면, 아내가 쥐꼬리만한 월급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용돈 주는데도 인색하듯이, 암컷 수리부엉이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사냥 나갈 것을 재촉했다.
암컷의 앙탈에 수컷은 잠시 이혼을 고려하는 지, 허탈하게 눈을 껌뻑거리다가, `그래도 살아야지'라고 결심한 듯 다시 죄없는 들쥐를 향해 날아갔다.
어느날 카메라는 암컷의 품속으로 접근했다. 거기엔 3개의 탐스러운 알이 있었다. 암컷의 식욕은 더 왕성해졌고, 수컷의 사냥감도 들쥐보다 큰 토끼를 포함해, 암컷의 입맛에 따라 다양해져갔다.(사람사는 세상에도 임신한 아내가 한밤중에 순대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 기꺼이 찬바람을 무릅쓰고 야시장으로 향하는 착한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가?)
태어난 새끼에게 토끼를 뜯어먹이는 암컷을 보자, 수컷은 자극을 받은 듯 곧바로 일터로 향했다.
이번엔 민가였다. 수컷 부엉이는 자기 몸집만한 오리와 토종닭을 닥치는대로 사냥했다. 너무 무거웠던지 머리를 잘라서 물고는 힘겹게 날아갔다.
인간이 나타나면서 혼란스러운 와중에, 철모르는 새끼 한마리가 집에 떨어져나오는 사태가 발생하자 수컷 수리부엉이는 주변을 경계하고, 따로 사냥을 해오는 등 뜨거운 부성애를 보여주었다.
사냥장면에서 잔혹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더러 있었지만, 그보다는 암컷과 새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나약한 인간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경제위기가 불어닥친 이후, 부부가 갈라서고, 아이가 버려지는 일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가슴아파 했는가. 수리부엉이의 사랑이 이렇게 위대할 진대, 인간이 조그만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비겁해지고, 자기책임을 회피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수리부엉이를 본받기로 했다. 아내의 요구와 만족도가 아무리 높아도, 열심히 맞추고 살아가다보면 행복한 날이 오지 않겠는가.
[P.S]박수용 PD의 집념과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몇년 후에 나올 그의 새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두번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같이 봤다. 이후 나는 사무실을 나가기 위해 현관을 나서면서 "황소 한마리 잡아올께"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때마다 아내는 "닭한마리만 사오세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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