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현장르포] 돈과 쾌락의 은밀한 현장 '호스트바'
기사입력 2000년 03월 06일 14시 39분
남자가 나오는 술집. 이른바 `여자 룸살롱'.
키 크고 잘 생긴 남자 접대부들이 여성의 `간택'을 기다리며 미소를 짓는다. 때로는 여자손님을 위해 옷을 벗기도 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확산추세에 있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호스트바.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이고 호스트는 누구인가. 호스트바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호스트바를 밀착취재했다.
■호스트바 영업 현장
평일 새벽 3시. 취재팀은 서울 경찰청 특별단속반 `떼제베'의 협조로 호스트바 단속현장에 동행했다.
호스트바의 위치는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5분거리의 지하 1층. 30명의 경찰이 삐끼의 무전기를 빼앗아 제압한 후 문을 박차고 기습 투입됐다.
영락없는 룸살롱 분위기의 실내 공간은 총 60여평. 6개의 방이 모두 성업중이었다. 테이블마다 양주에 과일안주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고, 여자 한명에 남자 한명씩 쌍을 이뤄 있었다.
경찰이 가장 끝방의 옆을 부수자 호스트(남자 접대부) 5명이 웅크리고 숨어 있다가 놀란 토끼눈을 했다.
남자 접대부들은 하나같이 미남에 정장 혹은 세련된 캐주얼 차림. 손님인 20대 여자들도 미모에 섹시한 스타일이었다. 호스트 25명, 여자 손님 30여명, 밴드 4명, 웨이터 7명이 즉석에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어떤 20대 여자 손님은 펜을 못 들 정도로 손을 부르르 떨었지만 또다른 여성은 "뭐가 잘못됐나요"하며 당당해 했다. 조사 뒤 호스트는 경찰로 이송, 여자손님들은 귀가조치됐다.
역시 새벽 3시.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의 M단란주점. 호스트바 영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를 받고 방배경찰서 강력반 형사 6명이 출동했다. 하지만 술집 안에는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영업을 한 흔적은 남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피다 만 말보로 담배가 연기를 뿜고 있었다.
건물주가 나타나 형사들에게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거 마구 침입해도 되는거야."
경찰들은 천장, 싱크대, 냉장고 속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벽도 일일이 밀어본다. 그러던 중 우성호형사(34)는 룸 3개중 한 곳만이 유독 실내공간이 좁은 것을 발견했다. 두겹으로 된 밀실 출입구. 벽 한쪽을 뜯어내자 1평반 남짓한 밀실에 주방장, 남자 접대부 8명, 여손님 4명 등 모두 14명이 숨어 있다 질겁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여자손님 4명은 룸살롱 접대부. 놀랍게도 남성접대부들 중에는 대학생과 회사원까지 섞여 있었다.
단속에 걸린 김모씨(28．서울 강남구 논현동) 등 접대부와 여자손님들은 훈방조치. 현장에 없었던 업주 구모씨(40．서울 마포구 연남동)는 수배됐다. 남성접대부와 관련된 법규가 없어 경찰은 업주에 대해서만 `무허가 영업'이라는 조치밖에 취할 수 없었다.
■호스트바 그곳에선
룸살롱 아가씨들과 수사경찰을 통해 들은 호스트바의 이야기는 진기롭기까지 했다.
여자 손님들이 룸 안으로 들어가면 호스트가 따라 입장한다. 보통 3∼5명씩 짝을 이뤄 선을 뵌다. 손님은 나란히 서있는 호스트 중에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찜'한 뒤 마담에게 말한다.
호스트는 튀어야 선택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자신의 특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간택'받지 못한 호스트는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라는 말과 함께 퇴장. 돌아서는 순간에도 절대 인상쓰면 안 된다.
취기가 오르면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된다. 경찰들은 남자들이 룸살롱에 가서 아가씨들에게 하는 행위는 오히려 점잖은 편이라고 말했다. `가위 바위보 게임'으로 서로 옷을 벗기는가 하면 호스트에게 애무를 주문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호스트의 성기를 붙잡고 장난을 친다. 젓가락으로 수표를 집어 지퍼 안에 넣어주기도 한다.
못 노는 호스트는 즉석 퇴출. 서울 무교동 T비즈니스클럽의 장모양(24)은 "마음에 안 들면 팁 3만원을 던져주고 나가버리라고 한다"며 "못 노는 호스트는 퇴출 1순위"라고 말했다.
호스트와 통상 성관계로 이어지는 2차를 나가기 위해서는 통상 마담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여성이 2차를 원하더라도 때로는 거부당하는데 이는 손님 유치를 위한 상술의 일환이다. 직장인들 출근시간인 오전 7∼8시가 돼도 호스트바 영업은 끝나지 않는다.
장모양은 "새벽 2시에 술을 마시기 시작해 오후 4시까지 자장면을 시켜먹으며 놀았다는 선배 언니의 경험담도 들었다"며 "호스트바는 한밤 영업시간 외에 한낮에도 손님만 있으면 영업을 한다"고 말했다.
호스트바는 다양한 방법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꼭 변태적인 모습만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여성도 있다. 서울 강남 Q룸살롱에서 일하는 L양(24)은 "옷벗기 게임을 한 적은 있지만 주로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푼다. 상상보단 변태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호스트는 누구인가
남자접대부를 뜻하는 호스트는 `선수'라는 은어로 불린다.
취재팀이 만난 은퇴한 `선수' K씨(31). 현재 직장인인 그는 과거 10년 가까이 여자들의 술시중을 들었다. K씨는 아직도 여성 고객 명단이 있다. 한창 일할 때는 일주일에 한번씩 고객들에게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고객관리는 호스트의 생명이다.
호스티스처럼 호스트에도 직급이 있다. `마담' `새끼마담'. 물론 다 남자들이다. 마담급 호스트의 나이는 보통 20대 후반. 잘 나가는 마담급 호스트는 휘하에 새끼마담을 비롯해 10∼20명의 호스트를 관리한다. 거느리고 있는 호스트를 묶어 `박스'라고 표현하며 박스의 규모에 따라 대@중@소 마담으로 나뉜다.
호스트는 마담이 장만한 집에서 집단 하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자 손님들에게 싸구려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 등은 특급 룸살롱의 아가씨들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최상품으로 온몸을 치장한다. 몸에 착 달라붙는 캐주얼한 양복에 로렉스 손목시계를 선호한다. 벤츠와 BMW를 몰고 다니며 직접 명함을 뿌리고 손님 헌팅에 나서기도 한다.
호스트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받는 공식적인 팁은 테이블당 10만원. 하지만 팁을 10만원만 주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한다. 손님과 2차(외박)를 나가면 30만∼50만원을 받지만 호스트들은 2차를 꺼린다. 호스트와 외박을 하고 나면 그 업소에 다시 안 가는 경우가 많은 여자 손님들의 성향 때문이다.
2∼3년차 호스트의 한달 수입은 1000여만원. 전성기는 대략 19∼23세. 25세가 넘어서 마담이 되지 못하면 퇴물취급을 받는다. 여자손님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선 근육질보다는 마른 스타일의 `선수'가 좋다. 키가 너무 큰 호스트도 환영받지 못한다. 1@78∼1@83 정도의 키가 가장 인기가 좋다.
호스트들 대부분이 즐기면서 일을 한다.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으로 만난 여자들에게도 자신이 호스트임을 당당하게 말하고 방문을 회유한다. 술집 아가씨들은 "얼굴만 봐도 호스트인 줄 단번에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호스트바와 연예인
호스트는 마담에게 친구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충원된다.
마담급 호스트는 나이트클럽에 들러 직접 `잘 빠진' 젊은이를 섭외하기도 한다.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처음에 거부반응을 보이던 젊은이도 쉽게 솔깃해 한다. 호스트를 하고 싶어 제발로 접촉해 오는 대학생들도 있다.
댄스그룹 멤버나 백댄서들은 춤을 잘 추기 때문에 호스트로 전업할 경우 인기가 높다. 얼마전 서울 서초경찰서의 단속에 걸려든 J씨(24)도 댄스스룹 출신. 그는 97년 데뷔했다 해체된 모 남성4인조 댄스그룹의 멤버. 수년 전 노래 한곡으로 연말 10대 가수에까지 올랐던 가수 S씨는 호스트바에서 일하다 가수로 픽업된 케이스. 호스트바에 놀러온 중견가수의 부인이 S씨를 추천해 연예인의 길로 들어섰다는 후문이다. S씨와 함께 일했던 호스트들은 S씨가 `별로 잘나가지 못했던' 2진급이었다고 얘기했다. 외모가 뛰어나고 춤, 노래에 능숙한 호스트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었다.
미성년 고교생도 호스트로 나선다.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중년 여성과 고교생이 사귀는 `역원조교제'도 호스트바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87년 서울 이태원의 `M0000'이 효시라고 알려진 호스트바는 `호스트바'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일반 음식점 허가를 받고 유흥주점 영업을 하거나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이 폐쇄조치 된 곳도 있다. 심지어는 아무 간판도 달지 않거나 호프집으로 위장해 영업하기도 한다.
워낙 은밀하게 영업이 이뤄져 경찰도 호스트바가 몇곳이나 되는지 가늠하고 있지 못한 실정. 서울 경찰청의 최웅풍속반장은 "호스트바는 근절보단 확산방지에 단속의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팀이 만나본 룸살롱 아가씨들의 말만 종합해 봐도 서울에만 수십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진해시 통신동의 K단란주점은 파출소와 경찰서에서 불과 10@, 5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호스트바 영업을 하다 발각됐을 정도였다.
■호스트바의 고객들
업소 아가씨들, 이른바 호스티스가 있는 곳에는 대부분 호스트가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40∼50대 여성은 물론 30대 초반의 유부녀, 여대생들도 찾는다. 남성도 여성과 동행하면 출입이 허용되는 호스트바도 있다.
호스트바 단골 중에는 젊은 여자 탤런트도 많지만 이들은 매너가 가장 나쁜 부류로 소문나 있다.
탤런트 K양, S양, H양 등은 호스트바 얘기만 나오면 거론되는 `골수파'다. 일부 대담한 여자 탤런트들은 호스트와 2차를 나가기도 한다. 호스트들에게 탤런트는 인기만점. "탤런트와 자봤다"는 게 호스트에게는 훈장과도 같다.
호스트는 고객의 신분을 철저히 숨겨주는 게 예의. 호스트 끼리도 고객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정작 탤런트와 관련된 소문은 `엉뚱하게도' 호스트의 손님인 룸살롱 아가씨들로부터 나온다.
호스트바의 주고객은 역시 호스티스들이다. 호스트는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손님 어깨에 팔을 올리지 않는다' `허락받기 전에 담배를 피지 않는다' `다리를 꼬지 않는다' 등의 원칙하에 최선을 다해 봉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목표가 `여자'가 아닌 `돈'이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으면 떼돈을 벌수도 있다. 강남 룸살롱의 한 여성은 "통장으로 한달에 1000만원씩 연인 호스트에게 넣어주는 언니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평범한 여대생과 간호사, 가정주부 등이 호기심 때문에 거금을 들여 호스트바를 찾는 경우도 있다. 여성들은 대개 3∼4명이 돈을 모아 `질펀한' 술자리를 경험한다. 하룻밤 술자리에 200만∼300만원의 거금을 쏟아붓지만 한번 호스트바를 경험한 여성들은 대부분 또 찾게 된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 신승철박사(남서울병원)는 호스트바를 드나드는 여성들의 정신상태를 `허영심과 보상심리'로 표현했다.
손님중 70∼80%를 차지하는 업소 호스티스들은 평소 시중들고 핀잔을 받으며 자존심이 상하게 마련이라는 것. 게다가 `있는' 손님들을 접대하며 돈을 펑펑 쓰며 노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동일화 심리'를 갖게 된다.
신박사는 "호스트바에 드나드는 여대생들도 사치와 허영심이 가득한 성격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성접대부와 여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호스트로 일하다 현장에서 단속에 걸리면 업주는 청소년보호법을 적용받게 된다. 이때 `미성년자' 개념에는 남녀구별이 없다. 미성년자가 술시중을 드는 것(유흥접객행위) 자체가 처벌대상으로 업주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수 있다. 그래서 경찰들은 호스트바 단속현장에서 가장 먼저 미성년자가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미성년 호스트가 없을 경우에는 처벌 규정이 애매모호해진다. 호스트와 손님간에 성적 접촉의 증거가 있다면 윤락행위방지법으로 양자 처벌이 가능하지만 단속현장에서 성관계 물증을 잡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처벌 근거는 식품위생법밖에 없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8조에는 `유흥접객원＝술과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구는 부녀자'로 명기돼 있기 때문에 남성 접대부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따라, 마지막 처벌규정은 식품위생법 시행령중 제7조 `영업의 종류'. 접객원을 둘 수 없는 휴게음식점, 일반음식점, 단란주점영업 허가를 받은 업소가 호스트바 영업을 하면 `무허가'로 처벌 받는다. 여자 손님들과 호스트가 대부분 훈방조치되는 이유도 별도의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참고인 자격으로 차후 조사때 경찰서를 몇번 들락거릴 뿐이다.
이와관련 작년 7월에는 남성 접대부와 관련된 처벌조항 신설을 놓고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건복지부가 호스트바와 게이바 등 남자접대부가 있는 유흥업소 확산을 막기 위해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남자접대부 처벌조항을 넣으려 했으나 여성특별위원회와 여성단체 등에서 `남녀평등'을 문제삼아 반발하고 나서 백지화된 것.
보건복지부 약무식품정책과 한 관계자도 "식품위생법을 호스트바 단속에 적용하기에는 사실상 입법취지가 다르다"며 처벌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취재후기]
여성이 주고객인 호스트바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향락산업'의 또다른 변종이었다.
그곳은 남성 술문화에 억압당한 일부 여성들의 탈출구도 아닐뿐더러 단지 돈을 물쓰듯 쓰는 쾌락의 현장일 뿐이었다. 술과 성적 접촉이 가능한 접대부가 있다는 점에선 남녀의 주체가 바뀌었을뿐 룸살롱과는 너무나 닮은 꼴이었다.
룸살롱 여성 접대부는 인정하면서 여성을 위한 남성 접대부는 안된다는 정부의 입법의도에 반발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녀평등의 논리에선 타당해 보였다. 또 호스트바를 `불법 변태영업'으로 처벌하려면 일반 요식업소 허가를 받고 불법으로 접대부를 고용하고 있는 수많은 단란주점, 룸살롱도 단속해야 형편에 맞는다.
그러나 룸살롱이든 호스트바든 불건전한 음주문화의 한 공간만은 분명했다. 물론 `룸살롱'을 탄생시킨 술문화에 그 `원죄'가 있지만.
`여성 전용 문화'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만큼 여성전용 술집이 없으란 법은 없다. 문제는 그곳이 과소비와 말초적 쾌락주의만을 양산하는 일그러진 모습일때에 있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와는 달리, 그들만을 위한 공간이 전무한우리의 현실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SC 현장 르포팀]
이유현 기자 youlee＠
송원섭 기자 fivecard＠
김남형 기자 star＠
이영주 기자 sun＠
김경민 기자 kyung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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