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이종국 일산병원과장 글을 읽고
기사입력 2000년 03월 03일 15시 53분
이종국과장님-세상일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상식선에서 일을
알아보고 판단하면 됩니다. 지난 2월 23일 제 칼럼에 대한 일산 백병원 이종국소아과과장님의 반론에 대해 전 '상식'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이글을 씁니다. 일단 이종국과장님께서 전공의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분으로 진심으로 사죄를 한다는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물론 그날 제가 인제대학 일산 백병원에서 아픈 아이의 엄마로서 겪은 정신적인 충격과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같은시간 급한 산기가 있는 딸을 데리고 인제대학 일산백병원 응급실에 왔지만 의사도 간호사도 나타나지않아 방치된채 아이를 낳았다며 `내 자식 불쌍해서 어떻하냐?'고 절규했던 한 아주머니의 처지에 비하면 제가 받은 상처는 그래도 추슬러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종국과장님은 그날 경위를 알아보았다고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문제의 수련의를 비롯한 `집안식구'들의 이야기만을 들으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상대방인 저의 이야기도 전화 한통화면 들으실수 있는데 말입니다. 저의 이야기도 듣는 것-저는 그것이 상식적인 경위조사겠지요.
아이가 아플 때처럼 엄마가 고통스러울 때는 없습니다. 그런 때 모든 엄마들은 우리 아이 살려주세요하는 다급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병원응급실을 찾습니다. 저는 과장님께서 쓰신 것처럼 아픈아이를 들처업은 엄마가 의사를 무시한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가능한지 묻고 싶습니다.
아이를 앉히면서 저는 `우리 아이가 일주일째 배가 아팠어요-'라는 말을 하자 의사는 대뜸 `그게 열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제 자식을 위해서-하지만 이종국과장님도 의사로서 20년넘게 일해오신 분이니 환자의 설명이 얼마나 중요한 진료의 기준이 되는가를 `상식'으로서 알고 계실 겁니다. 더구나 말을잘못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소아과의 경우는 '엄마'의 상태설명이 필수가 아닙니까? 그러나 그 의사는 제 입을 막았습니다. 그것은 의사로서 기본도 상식도 없는 행동입니다. 그가 사흘걸러 당직을 하는 환자를 많이 보는 의사라는 사실이 경과를 설명하는 아기엄마에게 면박을 주는 충분하고 정당한 이유가 됩니까? 저는 그날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했고 제 아이를 위해 넘기자고 `상대하지 말자, 무시하자'고 했습니다. 그는 평소 의사가 환자무시하는 것이 권리인것처럼 계속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런 태도가 그의사에겐 유감스럽게도 상식이었습니다.
그때 밖에서 천둥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싱글거리더니 `밖에 비오나?'하며 반말 비슷하게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기가 막혀 . `몰라요'하고 짤막하게 대답하자 그것이 마음에 안든 듯 반말비슷하게 `해열제에 기본이 어딨어. 내가 처방안했는데 어떻게 알아-'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저는 `인간으로서 예의와 교양을 지키세요'라고 반말투로 말하는 그에게 일부러 깎듯이 존대말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처방전을 휘갈겨 썼습니다. 저는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서 불안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을 엄마가 어디있습니까? 아니다 다를까? 약사에게 성분을 물어보니 콧물을 줄줄 흐르는 아이를 위한 약은 없고 진해거담제와 강한 항생제가 들어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럴 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감기 약은 없고 기침이나 가래약을 넣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처럼 대단찮은 감기라고 면박을 주었으면서 왜 그런 강한 항생제를 썼는가? 상식선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저는 이종국과장님이 들은대로 그 약을 진찰대에 내동댕이친 것이 아니라 약값을 지불하고 가져왔습니다. 약도 있고 영수증도 있고 병원기록에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이 병원에 오지마세요'라고 말하기 전에 그의사와 또 한사람의 의사가 `그럼 오지 않으면 될 것아니야'라고 먼저 소리를 쳤습니다. 집에 와서 저는 그 약성분을 제 친구인 약사와 의사에게 물었고 그들은 그 약을 먹이지 말라고 제게 충고했습니다.
이종국과장님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제게 `일방적'이었다고 하시는지요? 의사가 환자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듣지 않은 것, 의사가 `일방적으로' 영문도 모르는 환자에게 분풀이를 해대는 것, 의사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환자보호자에게 `반말투'로 이야기하는 것이-과연 상식인지요?
이종국과장님은 `사람피부 5센티 찢어진 것 꿰매는 수술이 양복 1센티짜깁기 기술보다도 인정못받는 세상'이라고 썼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사람 꼬매주는 돈이 양복 짜깁기해주는 돈보다 적다고 생각해섭니까? 그 근거는 돈입니까? 이 과장님은 인간을 양복쪼가리처럼 하찮고 대수롭게 생각해 물건처럼 취급한 의사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물론 아닐 겁니다. 이종국과장님은 의사가 이처럼 대접못받는 세상이라는 점을 은유했을 겁니다. 그러나 환자대접을 제대로 해야 의사도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종국과장은 우리사회에 환자들이 자신을 `물건취급'하고 `몰모트취급'한 의료진에 대해 얼마나 많은 분노를 경험했는지를 알고 있습니까? 저는 의사들이 한번쯤은 반드시 환자가 되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습니다.제가 그 칼럼을 쓴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원합니다. 좋은 의사, 실력있고 사람다운 의사를 우리곁에 두기위해섭니다. 어느 누구도 삼류의사에게 잘못된 진료를 받고 돌팔이의사에게 이유없는 화풀이를 당하면서 살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의료소비자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되고 왜곡된 의료행위를 지적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저의 권리이자 어린 생명을 지키는 엄마로서 저의 정당방위입니다. .
무엇보다 이종국과장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종국과장은 돌팔이며 3류의사인 자신의 제자인 문제의 수련의를 사랑한다고 끝맺었습니다. 그러나 과장님-나라를 사랑하는 방법과 이성을 사랑하는 방법을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허물도 덮어주고 결점도 사랑하지만 나라사랑이 그 허물과 잘못을 덮어줄 때 나치즘과 일본의 파시즘처럼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납니다. 과장님이 의사로서 잘못을 저지른 그를 감싸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웃사람은 아랫사람의 잘못과 비리와 허물을 덮어주는 댓가로 그의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많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엄격해 지고 잘못을 상식선에서 지적하고 바로잡아주어야만 과장님이 사랑하는 `3류의사'`돌팔이'도 `일류의사'`어진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종국과장님이 진정으로 그 수련의를 사랑한다면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가 밤 9시에 아이를 업고 간절한 심정으로 응급실을 찾은 엄마에게 어떠한 분노와 상처를 주었는가를 알게해야합니다. 저의 글은 독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모든 의료행위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이 세상의 정의는 약자를 보호할 때 존재합니다. 저는 아픈 아이를 들쳐업고 절박하게 응급실을 찾은 수많은 약자인 아기엄마들을 위해 그 칼럼을 썼습니다. 그 어떤 아기엄마도 저와같은 일을 당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