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씨 5년만에 창작집 '딸기밭' 출간
기사입력 2000년 03월 02일 15시 23분
환절기랄까. 신경숙이 5년만에 낸 창작집 `딸기밭'(문학과지성사)은 그녀가 겨울과 봄 사이의 경계 어디쯤을 서성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겨울'은 1인칭, 추억, 독백, 밀실, 자전적인 내용 등이다. 15년전 소설쓰기를 시작한 때부터 신경숙 작품세계를 지배해 온 특징이다. `봄'은 3인칭, 객관성, 바깥, 수다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표제작에는 주인공이 한밤중 야전침대에서 책 외판원과 섹스를 하고, 이어 멋쟁이 동갑친구와 딸기밭에서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어둡고 우울한 자정의 창고에서 햇빛 환한 봄날 오후의 딸기밭으로 나선 것. 신경숙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육체성. 여러 작품에서 섹스가 등장한다.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다. `깊은 슬픔'이나 `외딴 방'에선 상상할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섹스는 관능적이지 않다. 화해와 희망을 나타낸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에선 태어난 지 일곱달만에 죽은 딸로 인해 냉랭했던 신혼부부가 섹스를 통해 사랑을 회복한다.
이번 창작집엔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중편 넷, 단편 하나. 그런데 단편을 뺀 모든 중편에 죽음이 등장한다. 상실의 슬픔이다. 여전히 슬픔이 주조를 이룬다.
중편 `딸기밭'에서 우울한 남자는 살아남아 주인공에게 전화를 하고, 발랄한 여자친구는 죽는다. 생명과 화해를 상징하는 섹스와 죽음의 혼재. 그 생의 불가사의. 신경숙은 그 서늘한 모순, 슬픈 아름다움을 몸으로 받아들여, 한결 깊어진 시선으로 형상화한다.
[임정식기자 da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