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 (32)
기사입력 2000년 03월 02일 14시 45분
"그렇다면 나도 당신들을 공안에 신고해서 골로 보낼 수가 있지."
이대진이 눈을 치켜떴지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입술을 들썩이는 노인의 손을 잡아 진정시켰다.
"자, 진정하세요. 저는 오히려 이 사람들이 돈을 목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우리 몸값을 받으려고 하다니. 그럼 우리는 이놈들의 인질이란 말이요?"
입술을 떨며 노인이 말했을 때 최씨가 눈을 부릅떴다.
"이 영감탱이가 무슨말을 하는 거야? 우리 아니었다면 너희들은 벌써 북으로 끌려갔어. 베이징에 북조선 수색조가 얼마나 깔려 있는 줄 알아?"
"당신, 노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이제는 이대진이 최씨에게 눈을 부릅떴다.
"이건 애비없는 호로새끼 아니야?"
"뭣이라고?"하면서 최씨가 어깨를 세우며 일어나려다가 장용수가 헛기침을 하자 움직임을 멈췄다. 장용수가 이대진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알건 다 알고 성질도 대충 부렸으니 결말을 냅시다. 오늘부터 하루 5000위안 씩 경비가 추가되오. 내일 데려가면 25만 5000위안이 된단 말입니다."
"노인들의 식사나 치료, 주거 환경이 요구대로 이루어지는 조건이오."
장용수를 쏘아본 이대진이 말을 이었다.
"매일 노인과 통화를 할 수있도록 하고 내가 내 눈으로 환경과 나머지 네 분을 확인시켜 주도록 해주시오. 그러면 합의할 테니까."
"좋소. 와서 직접 보시오."
장용수가 식탁 위로 손을 내밀었으나 이대진은 머리를 저었다.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지만 싫은 사람 손은 잡지 않습니다. 성격에 가식이 없어서."
그러자 손을 걷은 장용수가 웃었다.
"우리야 돈만 받으면 되니까. 당신하고 친해질 필요 따윈 없겠지."
"돈은 한국정부에서 내 줍니까?"
갑자기 노인이 불쑥 물었으므로 이대진이 정색했다. 그리고는 노인의 눈을 보면서 조금 망설였다가 대답했다.
"그런 셈이지요."
그러자 노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대통령이 지시를 했겠지요? 아니면 국방장관이던가."
노인은 6．25때 20세 정도였을 것이고 그때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있었다. 그 나이에 그가 한국정부에서 기억나는 관직과 이름으로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에 대한 것 뿐일 것이다. 이대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우린 민간단체지만 대통령의 간접적인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사관에서는 왜?"
다그치듯 노인이 묻자 이대진이 힐끗 장용수를 보았다.
"비밀로 하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왔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렇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노인의 두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옆에 앉은 장용수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쓴웃음이 떠올랐고 최씨는 미심쩍은 표정이다. 이대진의 말을 셋이 모두 다르게 받아들인 것이다. 장용수가 노인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더니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내일 다시 연락합시다."
"내가 연락을 하지요."
"우리도 필요하면 연락을 하겠습니다."
이대진의 시선을 받은 장용수가 웃었다.
"국제반점에 계시더군요."
쓴웃음을 지은 이대진이 노인의 손을 쥐었다. 이자들은 자신을 미행했던 모양이었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선생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