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인터넷 황제 손정의 - 찬사와 질시 두가지 시선
기사입력 2000년 02월 29일 14시 43분
얼마 전 일본 주간지에 소프트뱅크사와 손정의씨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기사내용이 일반적인 회사소개라든가 손씨에 대한 인터뷰 기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손씨를 비방하겠다는 의도가 빤히 드러난 기사였다.
내용은 손씨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떻게 회사를 운영해 왔는지에 대한 장문의 추적기사였다. 형식상으로 본다면 그리 특이할 것도 없는 그런 일반적인 가사였지만 문제는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취재의도에 있었다. 그 내용은 손씨가 소프트뱅크를 창립하기 전에 잠시 파친코점을 경영했다는 것. 마치 커다란 폭로나 되는 듯 4페이지에 걸쳐 게재됐다.
현재의 소프트뱅크사 자본금이 당시 운영했던 파친코점에서 나왔다는 주장이었다.
현재 일본에는 약 70만명의 재일동포들이 살고 있다. 해방 후에는 150만명 이상이 살고 있었지만 그동안 귀화한 재일동포들이 많아 반으로 줄어 들었다. 하지만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심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취직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재일동포들은 체격이 좋으면 스포츠 선수가 됐고 노래를 잘하거나 인물이 반반하면 연예인이 됐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식당 아니면 파친코점을 운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식당하나 차릴 밑천 하나 없는 재일동포들은 주먹세계에 뛰어들어 야쿠자가 됐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도박성이 강한 파친코점을 운영하는 재일동포들을 은근히 무시해왔다. 요즘이야 꽤 괜찮은 사업으로 인식되어 일본인들도 너도나도 파친코 사업에 뛰어 들어 오히려 재일동포 상권을 위협하는 상황이 됐지만 정말이지 과거에는 차별이 너무 심했다.
따라서 손씨를 비하하기 위해서 쓴 것이 손씨가 과거에 대한 `폭로기사'였다. 그것도 자신들이 발로 취재해서 쓴 것이 아니라 손씨 밑에서 일하던 재일동포 출신 부하직원의 입을 빌어 썼다. 무슨 거창한 사실을 폭로하는 것인양 떠벌리면서 말이다. 다행히 그 기사를 읽어 본 일본 독자들의 반향이 별로 없어 유야무야 조용하게 사그라들었지만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이 사건이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이렇게 사실을 `뻥튀기'하거나 왜곡@호도하는 사례는 많았다. 한국인이 썼다고 공표했지만 실제 작가는 일본인 가세 히데아키인 `추한 한국인', 술집에서 일하는 일부 한국여성들의 얘기를 늘어놓고 마치 한국여성 전체가 그런 것처럼 한국여성까지 직접 등장시켜 썼다고 호들갑을 떤 `스커트가재'(치맛바람) 등.
아무튼 꼭 누군가를 앞세워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일본인들의 근성인 모양이다. 이번 손씨에 대한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간혹 손씨에 대한 기사가 나왔지만 그것은 대부분 동정기사 정도였다. 그런데 2월 들어서부터 일본언론의 분위기가 웬지 전과는 달랐다. 소프트뱅크사와 손씨에 대해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기사의 제목이 달라져갔고, 기사내용도 신문사별로 조금씩 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본 언론계에서 일하는 재일동포를 만날때면 늘 손씨를 화제로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지난 주부터 일본의 매스컴이 손씨에 대해 거침없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손씨의 국적은 일본. 또한 오부치 수상의 경제분야 자문역을 맡고 있기도 하다. 작년에는 일본경영단체연합으로부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또한 일본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기업인에게 주는 `재계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 `주간문춘'에서는 소프트뱅크사가 중심이 되어 인수한 일본채권은행에 대해 `일본 국민들이 어떻게 해서 그 은행을 구해 놓았는데 손씨에게 넘겨주느냐'면서 공개적으로 적대감을 나타냈다. 또한 `주간신조'에서는 손씨와 빌 게이츠를 비교하면서 은근히 손씨를 흔들었다.
특히 우익계 정치인이나 우익성향의 경제인들의 반발은 아주 노골적이다. 일본국적의 손씨에 대해서 경계를 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일본 국민들은 무관심 그 자체다. 다만 젊은이들만이 여전히 손씨를 자신들의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