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카사노바] '가짜 미군소령' 박창수 (4)
기사입력 2000년 02월 23일 13시 38분
박창수의 꼬리가 잡힌 것은 신촌 지하철역에서 헌팅한 정미경(가명．23)에 의해서였다.
박창수가 지하철 노선에 대해 물어보면서 접근, 한국에 파견나온 미군 정보장교를 사칭하며 유혹했던 여자다.
박창수는 다른 여자들과 데이트 약속이 없으면 정미경의 오피스텔을 찾아가 동침했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는 사이 정미경은 탁자위에 놓인 박창수의 핸드폰을 보았다. 호기심에서 핸드폰을 열고 보턴을 이것저것 눌러봤다. 입력돼 있는 여러개의 전화번호가 나왔다.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지만 너무 모르는 점이 많았던 터라 슬며시 좀 알아보려는 생각에서 전화번호들을 적어놓았다.
샤워를 마친 박창수가 출근한다고 나서자 정미경은 시치미를 떼고 그의 품에 안겨 키스를 한뒤 따라나가 배웅을 하고 들어왔다.
그녀는 박창수의 핸드폰에 메모된 전화번호들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일까? 첫번째 번호를 골라 걸어봤다. 신호가 몇차례 가더니 "여보세요"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미군 특수부대 장교면 무슨 기관원이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자가 받는게 이상하다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박창수씨라고 아시나요?"
"네, 그런데 왜 그러시죠?"
"실례지만 어떤 사이신가요?"
"그런건 왜 물으시죠?"
"저와 결혼할 사이인데 그이 핸드폰에 그쪽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기에 궁금해서 걸어본거예요."
"뭐, 뭐라구요? 결혼할 사이라구요? 그인 나하고 결혼해 미국 가기로 돼 있는데…"
이들의 꿈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하늘이 노랬다. 힘없이 수화기를 놓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린 이들은 한참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던 둘은 피해자 동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연락해 만났다.
박정현(22．가명)은 신촌의 한 카페에서 박창수를 만나 몸을 허락한뒤 여러차례 몸과 돈을 줬다고 했다. 그리고 한번은 박창수의 임시거처라는 종로의 어느 여관에서 함께 잔 적이 있다고 했다.
정미경은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미군 특수부대 장교라는 신분이 마음에 걸려 우선 경찰에 상담부터 해보기로 하고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로 전화를 걸었다.
"미군 특수부대 장교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은 임형사는 `뭔가 있다'는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젊은 여자가 미군 장교 신분을 자세히 알고 싶다?' 수사 베테랑인 임형사가 놓칠리 만무다.
"여보세요. 조금 자세히, 아니, 만나서 얘기합시다."
"경찰이 미군 장교에 대해서도 알아주실 수 있는지부터 말씀해주세요."
"걱정마세요. 경찰을 믿으세요. 만납시다."
그래서 정미경은 임형사를 찾아왔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임형사는 정미경을 시켜 박정현을 불러내 함께 만났다.
임형사의 얘기다.
"박정현은 늦은 밤에, 그것도 술에 취한채 따라갔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저 종로의 어느 여관인 것으로만 기억난다는 거예요."
임형사는 이들로부터 박창수의 인상착의를 확인한뒤 같은 수법의 전과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끝에 박창수의 사진을 찾아냈다. 이를 정미경과 박정현에게 보여준 결과 "맞다"고 했다.
임형사는 다음날부터 박창수의 사진을 들고 종로 일대 여관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 끝에 종로구청 부근에서 비슷한 사람이 묵는 여관을 찾아냈다. 주인을 시켜 잠겨진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군복 등 박창수의 흔적이 나타났다.
"박창수는 월 25만원에 방을 빌려 놓고 며칠에 한번씩 들어와 자거나 옷만 갈아입고 나간다는 겁니다. 며칠을 잠복근무했는데 박창수가 도저히 나타나지 않는거예요."
임형사는 정미경을 시켜 박창수에게 전화를 걸도록 했다.
"그는 태연하게 도쿄에 출장와 있다며 연락을 못하고 와 미안하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았지요. 알고보니 이지연과 제주도로 예비 신혼여행을 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틀뒤 옷을 갈아입으려고 들어온 박창수는 임형사에게 검거됐
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