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강일홍 '인기없으면 찬밥, 매정한 방송사'
기사입력 2000년 02월 21일 13시 57분
"억울하지만 얘기할 수 있나요. 괜히 불만을 꺼냈다간 그나마 출연중이던 프로그램까지 떨어져나갈 판인데요!"
30대 후반의 개그맨 A씨는 올해 방송 15년의 중견. 심현섭 김국진 등이 소위 `잘나가는 개그맨'으로 꼽히지만 그도 한때는 화려한 인기를 등에 업은 스타였다.
하지만 지금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출연료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처지다. 혹독했던 IMF 바람이 유독 그에게만 분게 아니지만 이런 좌절감을 느껴보긴 처음이다. `같은 연기자이면서도 개그맨이란 사실'은 그를 더욱 실망스럽게 한다.
A씨는 IMF 직전 50분짜리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해 회당 50만원을 받았다. 평균 2∼3개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니 한달 400만원(50×2개프로×4주)∼600만원(50×3×4)의 수입.
IMF가 터지면서 방송사의 출연료 삭감이 발목을 잡았다. 출연료가 일괄적으로 30%씩 삼감되고 기준도 종전의 `50분@50만원'에서 `60분@50만원'으로 하향조정됐다. 그래서 모두 40%가 깎였다.
그 뿐인가. 프로그램 출연횟수도 현격히 줄었다. 요즘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월 120만원(200만원의 60%).
재미가 없으면 출연기회 마저 수시로 들쭉날쭉이어서 수입문제는 아예 따지지 않기로 했다. 방송에 지속적으로 얼굴을 내밀기도 쉽지 않으니까.
화려했던 시절엔 몰랐다. `인기가 없으면 떠나라'는 식의 몰인정한 방송사의 행태를 보고도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어서였는지 실감나지 않았다.
훌훌 털고 떠날 생각도 해봤다.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설마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있겠느냐'는 말도 한다.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행사건 CF출연이건 번듯한 잇몸과 이가 있을 때 얘기다.
A씨는 요즘 `빈익빈 부익부'의 불합리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잘나가는 몇명'만 개별적으로 불러 슬그머니 삭감된 출연료를 현실화했다고 한다.
약자는 서럽다. 할말 못하고 눈치까지 봐야할 처지라면 더욱 괴롭다.
[강일홍 기자 e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