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메리칸 뷰티'] 섹스-마약 등 위기의 美가정 해부
기사입력 2000년 02월 20일 15시 17분
"오, 탁월한 재능이군!"
샘 멘데스 감독의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를 보고서 무릎을 탁 쳤다. 순발력이나 깜짝 재기가 아닌 진짜 타고난 재능이 느껴지는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즐거움 뿐만 아니라 `보람'까지 얹혀 준다.
"내 친구를 넘보며 팬티에 사정하는 아빨 누군가가 없애주었으면 좋겠어…."
스타트부터가 매우 당돌하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마지막 한해의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레스터 버냄(케빈 스페이시)은 회사에서 쫓겨난 42살의 `무기력 남자'다. 아내와 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기는 커녕 패배자로 취급받는다. 어느날 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에 끌리면서 삶의 의욕과 열정이 불타 오른다.
한편 풍요로움과 성공의 강박증에 빠진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은 부동산 업계의 황제와 불륜을 저지른다. 딸 제인은 이웃집 동창생이자 대마초를 피는 리키와 사랑에 빠진다.
리키의 아버지 프랭크는 해병대 장교 출신답게 가족의 군기에 엄격하지만, 그는 자신을 숨겨온 게이다.
버냄의 뒷머리에 총을 갖다대는 프랭크. 그는 버냄에게 동성애를 거부당하자 자신의 정체성 노출과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풍비박산, 불안, 두려움, 오해, 증오,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에 이어 스와핑, 섹스, 몰래카메라, 마약 등 정신의 공동화 현상을 그렸다.
`아메리칸 뷰티'는 르윈스키와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인 클린턴의 미국이 누리는 경제적인 장기 호황의 이상한 현실을 명제로 내세우고, 그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 양탄자 이면에 가려진 미국의 위기와 심각한 문제를 유리에 금을 내듯 날카롭게 해부하는 뛰어난 연출과 각본이 탁월하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케빈 스페이시와 아네트 베팅에게도 행운이 뒤따를 듯.
이 영화는 치명적인 아픔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통찰력에 대한 은유와 사색도 갖고 있다.
버냄의 영혼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살다보면 화나는 일이 있지만 분노를 품지 말 것. 집착을 버리면 몸안에 희열과 감사의 마음이 빗물처럼 흘러내린다고. 소박하게 살아온 모든 순간에 행복과 아름다움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붉은 장미의 짙은 향기가 배어나는 영화. 10권의 베스트셀러를 뛰어넘는 이 한편의 감동을 권한다.(26일, 명보 허리우드 씨네코아 강변CGV11 씨티 등)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