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이성진 사이버세상 '인터넷의 발렌타인 열풍'
기사입력 2000년 02월 15일 14시 38분
실세상의 각종 기념일을 인터넷 만큼 확실하게 지키는 곳도 없다.
설, 추석, 크리스마스는 물론이고 광복절,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도 인터넷 세상에서는 큰 이벤트가 된다.
특히 젊은 남녀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발렌타인 데이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인터넷은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는 각종 이벤트로 홍수를 이뤘다. 네티즌의 주된 연령층이 10~20대라는 점에서 더욱 열광적이었는데 웬만한 규모의 대형 사이트와 상업 사이트는 온통 발렌타인 데이를 겨냥한 이벤트를 경쟁적으로 펼쳤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각종 특이한 E메일 서비스는 물론이고 퀴즈를 풀어 초콜릿을 공짜로 보내주는 행사는 기본.
자신이 과연 여성들에게 얼마나 초콜릿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가를 측정하는 `섹시지수 설문조사'가 있었는가 하면 초콜릿을 줄 남자가 없는 여성들을 위해 괜찮은 남자들을 경매에 붙여 팔기도 했다.
이처럼 인터넷 세상의 이벤트는 실세상보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것이 특징이다.
네티즌은 넘쳐나는 이벤트 중에서 어딜 가서 어떤 이벤트에 참가하는가를 선택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
대부분의 웹사이트 운영자들은 조금 더 재미있는 이벤트, 좀 더 튀는 이벤트를 기획하기 위해 고통에 가까운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어차피 네티즌은 제일 재미있는 이벤트에만 몰려드니까.
그러나 이런 모습이 과연 올바른 모습인지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인터넷은 인터넷만의 문화와 룰이 있다. 그런데 인터넷 세상만이 가진 독특함을 살리지 못하는 것은 네티즌의 창의력을 헛되이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인터넷의 중요한 사건인 최초의 인터넷 발명일, 세계 최초의 대중적 PC `애플'의 탄생일, 웹브라우저의 발명일, 최초의 검색엔진의 발명일 등을 명확하게 규정해 이를 인터넷세상의 중요한 이벤트로 발전시킬 계획과 준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런 작업은 아직 네티즌 인구가 충분히 많지 않은 현재 단계에서 시기상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창의적이라고 불리는 웹 기획자들이 이런 정도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전혀 네티즌답지 못하고 벤처적이지 못한 태도가 아닐지.
인터넷이 활성화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인터넷 세상이 얼마나 거주공간으로 인식되느냐에 달려있다.
물건을 거래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통로 이상의 것이 이곳에서 가능해야만 인터넷 세상은 네티즌으로 북적거리는 신세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화이트데이를 위한 인터넷 이벤트가 또 넘쳐날 것이다. 이번엔 어떤 기발한 이벤트가 나와 네티즌을 즐겁게 해줄지 궁금하다. 인터넷 세상은 창의적인 이벤트가 없이는 무척 심심한 곳이 될 것 같다.
[데일리클릭 보도국장 master＠dailyclic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