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윤호진의 연극세상 '호주 천막극장서 느낀 감회'
기사입력 2000년 02월 13일 15시 51분
지난주 `명성황후' 영어버전 공연추진 건으로 호주 시드니를 다녀왔다. 시드니는 올림픽 준비에 모두 들떠 있었다. 곳곳을 새로 정비하고 해변가 정리를 하는 등 도시 전체가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만난 팀은 RUP(Really Useful Production)와 고든 프로스트 오거니제이션(The Gorden Frost Organization)이었다. RUP는 영국 RUC의 자회사로, 현재 서커스버전으로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캣츠'로 인기호황을 누리고 있는 프로덕션이다. 고든 프로스트도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성공을 거뒀던 `왕과 나' 공연지분을 80% 소유하고 있으며, 요즘 영국판 `왕과 나'를 준비하고 있다. `명성황후' 주인공 이태원이 출연하게 된 `왕과 나' 런던판이 바로 이 단체에서 기획된 것이다.
바쁜 일정을 틈타서 RUP관계자의 안내로 `캣츠'의 새로운 버전 `런어웨이 투 더 써커스'(Runaway to the Circus)를 관람할 수 있었다.
`캣츠'는 시드니의 20세기 폭스 영화사 투자로 설립된 대형 오락시설내 공원 잔디밭에서 공연되고 있었다. 공연장은 우리나라 옛 서커스단을 연상케하는 대형 천막극장 형태였다. 검정색 텐트위에는 `캣츠'의 노란 고양이 눈이 새겨져 있었다.
2000석 규모의 이 극장은 설치하는데 불과 3일이 걸린다. 완벽한 냉난방 시설과 고급 화장실 시설까지 갖춘 이 극장은 철수했을 때, 대형 컨테이너 4대에 모두 들어갈 만큼 이동이 수월하다고 한다.
극장 내부는 일반 극장으로 착각할 정도로 완벽하고 아늑했다. 작품은 기존 작품에 번지점프, 공중분해, 공굴리기 등 각종 서커스를 곳곳에 삽입해 고양이의 다채로운 움직임을 더욱 극대화시키면서 기술적으로 한차원 고도화된 공연을 선보이고 있었다.
공연관계자는 천막공연의 목적이 전세계 곳곳을 누비며 언제든지 공연할 수 있는 공연 유통 시스템 구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커스 버전의 `캣츠' 한국공연을 추진하고 싶다는 제의를 해왔다.
또한 그 천막극장의 설립에는 한 초콜릿 회사의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극장외벽과 모든 휘장들 그리고 프로그램 책자를 비롯한 모든 기념품에 그 회사의 초콜릿 광고가 넘쳐 흘렀고, 극장안에서 초콜릿을 팔아 향기가 가득했다.
이 극장은 한달후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갈 예정이란다. 극장안에 바글바글한 시드니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풍경이 진정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의 지방공연 실태는 상당히 열악하다. 열악한 지방공연의 활성화를 위해서 서울의 유수공연이 천막극장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공연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원래 문화 인프라가 풍부하기도 하지만, 천막극장을 통해 전세계 시장을 넘보겠다는 호주인들의 전략은 훌륭했다.
해마다 찔끔 찔끔(?) 공연을 연명해가는 `명성황후'도 이 나라에서 어디 땅만이라도 빌려준다면, 텐트가 아니라 비닐하우스 극장이라도 만들어 일년내내 영어, 중국어, 일어 버전으로 돌아가며 공연해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소원이다. [연극연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