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투쟁(9)

기사입력 2000년 02월 03일 13시 12분

투쟁 ⑨



소공동의 한정식집 방안이다. 상 위에는 갖가지 반찬이 가득 놓여졌고, 술은 시골에서 담가왔다는 매실주였다. 안동성이 이대진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인사를 마치고나서 둘은 세상 이야기만 주고 받으면서 겉돌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보았더니 이과장님은 중국하고 빅 오더를 하고 계시더군요. 중국측의 대리인 역할을 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이대진이 술잔을 들고 안동성을 바라보았다. 그가 조사한 바로는 안동성은 외무고시를 패스한 뒤에 외국에 10년 가까이 나가있다가 작년에 본부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과 지연과 학연, 게다가 성까지 다르니 인연은 전혀 없는 인물이다. 한모금 매실주를 삼킨 안동성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이대진의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이번에 받은 일본 오더가 타이페이로 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겠지요?"

"이번 후쿠오카 오더가 타이페이로 간다고 누가 그럽니까?"

정색한 이대진이 묻자 안동성이 웃었다.

"뻔한 일 아닙니까? 일본 대리인은 판매망도 없는 신용장 대리 개설자 뿐이더군요. 우리 정보망을 무시하지 마세요."

"어쨌든 우린 후쿠오카로 수출하면 끝입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하자가 없구요."

"내가 사장한테 직접 부딪치지 않고 담당자인 이과장님을 찾은 이유를 모르시는 모양인데."

정색한 안동성의 넓은 얼굴이 굳어졌다.

"극동전자의 기획실장한테 넌지시 떠보았더니 절대로 그런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펄쩍 뛰더군요.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담당자의 책임을 묻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아주 강경했어요."

"…."

"진심 같았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담당팀장이 어떤 의도로 이러는지 궁금했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안동성이 다시 이대진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과장님 꼭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실적을 올려야 합니까?"

"실적은 이미 초과달성 되었습니다."

한모금에 매실주를 삼킨 이대진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러나 눈은 번들거렸다.

"이번에는 제가 묻겠습니다. 중국에 여러 사업이 걸려 있는 줄은 알고 있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서 중국의 비위를 맞춰줘야 합니까?"

"국가 정책이 때로는 일부에게 피해를 끼칠 수가 있지요."

"저한테는 그것이 밖에 나가서는 인심이나 쓰다가 집안 식구를 들볶는 못난 가장같이 보이는 데요."

그러자 안동성이 입만 벌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군요. 보통내기가 아닌 줄 알았다니까."

이대진이 술잔을 들고는 시선을 내렸다.

이미 안동성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대만 오더의 수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사장이나 기획실장에게 한마디만 던져도 오더는 중지될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문책을 당할 것이 틀림없다. 술기운으로 얼굴이 달아오른 안동성이 이대진을 바라보았다.

"이과장님, 우린 최소한 몇년 앞은 바라보며 정책을 기획합니다. 내가 금방 납득을 시켜드리지 못하겠지만 이건 알아 두셔야겠는데."

안동성이 정색하고 이대진을 보았다.

"내가 왜 이과장님을 만나는지 그 이유를 아시오? 이런 자리에서 말이오."

"공식적으로 규제시키기가 곤란하기 때문 아닙니까? 제 반발도 무마할 겸."

그러자 안동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잘못 아셨소. 난 이과장님을 도우려고 온거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