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전쟁소설] 분노의 바다 (108)
기사입력 2000년 01월 31일 14시 30분
"사령！ 그렇게 판단하실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에가와 일등해좌가 잔뜩 진지해진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러나 후카미 해장보는 여전히 느긋했다.
"함장은 문무대왕 전단이 영해선을 따라 북상할 것을 우려하고 있군. 하지만 만약 문무대왕 전단이 그 방법을 선택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유리하지. 난 오히려 문무대왕 전단이 그렇게 하길 바라고 있다네."
후카미 사령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에가와 일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후카미 해장보가 해도판 쪽으로 걸어갔다. 함정을 나타내는 표지들이 해도판 곳곳에 빼곡이 몰려있었다.
일본해에 해상자위대 함정이 이렇게 많이 집결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동안 한국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일본 지도부가 한국과의 관계에서 너무나도 안일하게 대처했던 까닭이라고 해상자위대 고위간부들은 공통적으로 생각했다.
몇 해 전, 이미 계획된 통상적인 해상기동훈련과 적군에게 점령된 도서지역에 대한 탈환훈련도 원래는 일본해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수뇌부의 판단에 의해 그 훈련은 엉뚱하게도 일본 혼슈 남쪽 끝, 태평양의 유황도에서 실시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급성장한 일본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후카미 해장보는 이제 그 기회가 자신의 어깨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한국 해군 따위는 그가 지휘하는 제2 호위대군에 도저히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다케시마에서 승리를 거둔 제3 호위대군처럼 그도 한국 해군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줄 작정이었다. 잠시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은 후카미 해장보가 함장 에가와 일좌에게 설명을 다시 이어나갔다.
"그들이 영해선을 따라 북상하는 항로를 택해 다케시마로 향한다면 정상보다 반 이상 거리를 우회하는 것이야. 그럼 그동안 간몬을 빠져나온 제4 호위대군과 우리가 울릉도 해역으로 먼저 앞질러 갈 수 있게 된다. 오히려 제4 호위대군에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지."
"오！ 그렇겠습니다. 사령."
에가와 일좌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색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문무대왕 전단은 우리 뿐만 아니라 제4 호위대군까지도 상대해야 하네. 그렇게 되면 놈들은 우리에게 도저히 숫적으로도 상대가 안 되지. 게다가 울릉도 해역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다케시마에 배치된 제3 호위대군까지 가세할 수 있잖나. 놈들은 절대로 우리를 피하지 않는다."
후카미 해장보가 간단한 퍼즐을 맞추듯 쉽게 결론을 내렸다. 그는 한국 해군이 제2 호위대군을 목표로 삼으리라고 확신했다. 한국 해군은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설명을 들은 에가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럼 사령께서는 놈들이 영해를 넘는 즉시 공격할 생각이십니까?"
"문무대왕 전단이 영해를 넘은 후에…. 놈들이 우리를 목표로 접근하면 일단 거리를 띄워야 한다. 제2 잠수대가 매복한 지점까지 유인하면 예상 외로 간단하게 놈들을 처리할 수 있다. 일단 놈들이 눈치채지 않게 계속 외해로 유인하는 것이 중요하네."
후카미 해장보가 설명을 마치고 해도판을 노려보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잠수함 아라시오가 아직 예정된 위치로 전개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