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현장르포] 러시아의 꽃이 시든다 '인터걸'
기사입력 2000년 01월 31일 14시 14분
`인터걸, 어디까지 왔나'
금발에 푸른 눈, 모델같이 늘씬한 몸매.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미인. 그러나 그녀의 직업은 러시아 인터걸.
윤락근절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지만 매매춘 사각지대는 한두 곳이 아니다. 인터걸도 그 중의 하나. 특히 러시아 인터걸들은 98년말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한국잠행'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왜 이역만리 낯선 땅을 찾는가.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매매춘 실태는 어떠한가를 입체 추적했다.
■욕망의 서울거리
어떻게 하면 인터걸을 만날 수 있을까？ 취재팀은 인터걸을 찾는 일반 남성의 입장에서 접근해 보기로 했다. 접촉이 쉽다면 그만큼 윤락도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다는 판단에서 였다. 이미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서울 이태원.
일요일 저녁 10시. 50대 택시기사는 "어딜 가도 러시아 여자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타이오키드에서 해밀턴 호텔쪽으로 얼마 걸어내려가기도 전에 호객꾼(일명 삐끼)이 잽싸게 길을 가로 막는다. 20대 초반의 남자는 "예쁜 러시아 아가씨 있습니다. 맘에 안들면 그냥 나가셔도 괜찮아요"라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2차(외박의 속어)도 가능하냐"고 묻자 "댄서들은 합석만 하고 2차는 다른 아가씨들과 해야 해요. (술 안마시고) 곧바로 2차만 가면 25만원입니다"라고 말한다. `인터걸과의 매매춘은 잘 아는 고객만 가능하다'는 `사전지식'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비싼 것 같다"며 발길을 돌리자 2차만 20만원에 해주겠다며 끈질기게 잡아 끈다. 충격적인 것은 다음 말. "우리 가게는 `PD수첩'에서 두드려 맞은 유명한 곳이에요." 경찰이 수시로 순찰을 도는 가운데 버젓이 `불법영업'을 하는 배짱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인터걸은 누구인가
이태원의 K클럽. 5분이 채 안돼 두명의 러시아 여성이 들어왔다. 블라디보스톡 출신의 안나(22). 쇼핑센터 직원이었다가 지난해 10월 한국에 왔단다. 금발에 키 1m70. "영어는 콩글리시"라며 서툰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 의사소통을 했다. 안나는 취업비자를 받아 댄서로 일하고 있지만 룸도 뛰고 있었다. 팁은 7만원. 교육을 받았는지 두손으로 술을 따르고 담배를 필땐 양해도 구했다.
안나는 "2차는 안되느냐"고 묻자 "섹스는 절대 안된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넌지시 "향수를 사줄테니 따로 한번 만나자"고 제의하자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곤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재빨리 부츠 속의 스타킹에 감추고 업소 직원이나 동료에겐 "시크릿(비밀)"이라며 입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일부 댄서들도 매춘을 한다'는 경찰의 말이 떠올려 지는 순간이었다. 안나에게선 5일 뒤 오후 11시쯤 연락이 왔고, 만나자고 하자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매춘 인터걸의 실태는 수사관, 삐끼, 댄서 수입업자의 말이 일치했다.
매매춘은 삐끼들의 노상 호객행위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서울 강남의 몇몇 고급 룸살롱에서는 2~3번 온 고객들을 상대로 은밀히 이루어진다. 물론 강화된 단속때문이다.
일부 업소는 일본 `스내크바' 홍보벽보처럼 인터걸 사진첩을 비치해 단골손님에게 파트너를 고르게 한다. 지난해 9월14일 서울 영등포 경찰서는 이태원의 러시아 여성 10명을 검거하며 여성들의 사진이 실린 `아득한 만남'이라는 팸플릿을 증거물로 압수하기도 했다.
손님과 업소간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곧바로 포주(매니저라고 부름)에게 연락이 간다. `보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터걸은 운반책에 의해 손님에게 인도된다. 운반책은 인터걸을 태우고 30분 이내에 손님이 기다리는 호텔이나 모텔 등으로 출동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계 김병준형사는 "인터걸 매매춘은 비밀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라고 말한다.
인터걸의 `몸값'은 회당 20만~30만원선. 1회의 매춘으로 인터걸이 받는 돈은 5만원 안팎. 나머지는 포주와 운반책, 알선책이 나눠 갖는다. 99년 4월 윤락혐의로 경찰에 검거된 마리아와 부트로바라는 러시아 여성은 98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동안 각각 20회의 윤락을 한 것으로 조서에 기록돼 있다. 회당 화대는 각 30만원. 그러나 하루에 5회까지 윤락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터걸의 `섹스 테크닉'은 뛰어나다고 한다. "스스로 만족을 느끼면서 섹스를 한다"는 것이 인터걸과 두차례 성 경험이 있다는 삐끼의 증언(？). 더욱이 인터걸들은 돈을 벌려고 온 만큼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한국남성이 한차례의 섹스로 불만족스러운 경우 몇만원만 더주면 재차 관계에 응해 주는 것도 보통. 이런 소식은 고객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번져 단골에 단골을 낳는다.
■코리안 드림？
인터걸은 대개가 미인형이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푸른 눈, 금발이 많다. 나이는 대개 20대 초반, 신장은 1m70 안팎. 1m80이 넘는 여성도 있다.
러시아 댄서 수입업자 P씨는 "탤런트 최○○, 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미모가 빼어난 인터걸들이 많다"고 말한다. 인터걸들의 전직은 일반 점원, 교사, 스튜어디스 등 다양하다.
이렇게 아쉬울 것 없어보이는 미인들이 이역만리 타국땅에서 윤락에 종사하는 이유는 뭘까. 대답은 간단하다. 돈 때문이다. 이들이 러시아에서 받는 한달 급여는 40~50달러(약 5만원). 98년 러시아정부가 경제파산을 뜻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뒤 생활은 더욱 열악해졌다. 한국이 IMF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98년말부터 이들의 유입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찌됐건 한달에 1000달러(약 120만원)쯤 벌 수 있는 한국은 그 목적이 나이트클럽 댄서건 매춘이건 돈으로만 보면 `꿈의 나라'다. 누구나 한국에 가자고 하면 "좋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인터걸은 대개 현지 신문의 모집광고나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현지 조직에 연결된다.
젊은 러시아 여성들의 한국비자는 크게 두가지. 체류기간 6개월에 2년까지 연장 가능한 일명 `연예인 비자'(E6)가 있고, 통상 15~20일의 체류기간을 선별적으로 부여하는 `관광비자'(C3)가 있다. 인터걸의 대부분은 신청서류가 간단한 C3비자 소지자다.
그러나 러시아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달 봉급이 5만원이 채 안되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한국에 관광을 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고상원씨는 "현실은 알지만 관광비자로 입국하는 젊은 여성이 매춘을 하러 온다는 물증은 없는 것이 아니냐"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비행기에서 내린 인터걸은 한국 조직책이 공항에서 곧바로 픽업해 간다. 의심을 받지 않기위해 2~3명씩 행동하고 업소나 포주는 8~10명 가량의 인터걸을 보유하는데 수가 넘치면 분양하기도 한다.
■매춘 실태
인터걸은 서울 이태원, 역삼동 일대의 룸살롱 등지에서 암약한다. 최근에는 서울 북창동과 경기도 일산 나이트클럽 등 다방면으로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외사계의 성진호반장은 "검거 건수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98년부터 인터걸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인터걸들은 2~3명, 많게는 5~6명까지 여관이나 변두리의 아파트, 또는 동대문 근처의 속칭 `벌집'에서 단체생활을 한다. 지난해 4월 포주 1명과 함께 적발된 6명의 러시아 인터걸의 경우 주거지가 3명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모다방, 3명은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모 여관으로 기록돼 있었다.
인터걸들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다. 이들의 한달 평균수입은 120만원선. 러시아에서 2년여를 한푼도 쓰지 않고 벌어야 모을 수 있는 거액이다.
최근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인터걸들도 `원조'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의 기지촌 주변에는 러시아를 비롯해 네팔 스리랑카 인도여성들의 다국적 매춘이 행해지고 있다.
98년 외국여자들을 고용해 동두천에서 술집을 운영했다는 B씨의 말. "방글라데시와 네팔 여성들도 있다. 이들은 동남아 남성근로자를 위한 접대부다. 산업연수생 등으로 온 동남아 남성들은 한달 봉급을 하룻밤 술값으로 다 날리는 경우도 있다. 화대는 한국 접대부에 비해 다소 싸다."
지난해 서울에서 매춘행위를 하다 러시아 인터걸과 함께 검거된 윤락녀 가운데는 놀랍게도 페루 여성이 섞여 있기도 했다. 남미에서도 인터걸이 온다는 소문이 확인된 셈이었다.
인터걸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성병의 확산이다. 국내 사창가의 여성들은 정기검진을 받지만 이들의 경우 그런 장치가 전혀 없다.
인터걸 단속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 경찰들의 하소연이다. 경찰의 수사는 첩보에 의한 잠복을 통해 현장을 급습하는 게 보통이다. 그만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서울경찰청은 98년엔 인터걸 12명, 99년엔 30명을 검거했다. 물론 대부분이 러시아 여성들이었다. 이들의 나이는 20대 초반. 25세가 넘는 여성은 거의 없었고, 18, 19세 등 10대도 눈에 띠었다.
흥미로운 것은 포주와 인터걸의 계약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었다. 보따리 의류무역을 하다 5명의 인터걸과 함께 검거된 조모씨의 경우 마리나라는 여성에게는 한달에 50만원, 올가에게는 60만원, 나탈리아에게는 70만원을 주었고, 잉가, 나타샤 등과는 월 600달러에 계약했다. 그는 3개월 사이에 800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댄서의 순정
한국에서 일하는 러시아 여성중엔 매춘 목적의 인터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취업비자를 받고 미군 영내클럽, 관광호텔, 관광특구 등에서 일하고 있는 댄서들이 있다. 이들은 러시아 내의 송출회사를 통해 한국내 프로덕션과 계약을 맺는다. 또 한국 영상물심의 위원회 공연심의과로부터 심사도 받는다.
매춘을 엄격히 관리하는 프로덕션은 이들이 국내에 도착하자 마자 에이즈검사 등을 받게 한 뒤 그린카드(거주등록증)를 발급해 준다. `매춘을 하면 3000달러까지 벌금을 물게 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곳도 있다.
대다수 댄서들은 인터걸 때문에 자신들이 덤터기로 `창녀' 취급받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이들은 몸파는 인터걸들을 혐오한다.
댄서들은 쉬지않고 열심히 일한다. 또 매우 검소하다. "숙소를 옮길때 냉장고에 남은 소시지 한 조각까지 신문지에 싸간다는 것"이 한국내에서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는 P씨의 목격담이다.
서울 강남의 R호텔에서 일하는 4명의 댄서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일이 끝난 새벽 1시30분 쯤 24시간 영업을 하는 삼겹살 집에서 그들을 만났다. 스튜어디스 출신의 크리스티나, 초등학교선생이었던 애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갈리나, 회사원이었던 타냐. 이들중 3명은 모두 영어가 유창했고, 발랄했다. 또 꿈을 갖고 있는 러시아 여성들이었다.
러시아에 7세된 아들이 있는 스물 아홉의 이혼녀 갈리나. "계급구조가 달라 한국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아버지가 꽤 높은 군인"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한달에 200달러씩 집으로 송금한다고 했다. 러시아에 있을땐 꿈도 꾸지 못한 거액이다. 그녀는 네명중 가장 인기가 높다는 댄서였다.
98년 예술흥행 비자로 한국에 온 러시아 여성들은 400여명으로 집계됐다.(현재 700여명으로 추산) 95년의 48명에서 무려 10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남성의 경우는 95년 35명에서 98년 88명에 그치고 있다. 여성 댄서들의 공급 증가 이유는 당연히 수요의 증가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형사정책 연구원에 따르면, 러시아인 불법체류자는 92년 48명을 기록했고, 4년 뒤인 96년엔 그 30배에 이르는 1300여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적발되지 않은 사람까지 합치면 엄청난 증가추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의 경우 체류기간과 고의성, 국내법 위반 정도를 판단해 10만원부터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하지만 통상 10만원인 경우가 많다. 인터걸의 경우 매춘이 적발되면 강제추방이다. 그러나 강제 추방되더라도 서류를 위조해 재입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외국 불법체류자를 막기위해선 ▲정부가 철저한 단속의지를 보여줄 것 ▲고용주를 철저히 단속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인터걸 방지책에도 이를 응용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몇년전부터 러시아 여성의 비자발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금발 외국여성을 찾는 한국 남성들이 사라지지 않는한 한몫을 챙기기 위해 한국땅을 밟는 인터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취재후기＞
인터걸을 취재하기란 쉽지 않았다. 불법임을 알고 있는 이들의 `잠행생리'상 신분노출을 극히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어느 곳에서든 어렵지않게 윤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건 충격이었다. 이역땅에서 `살기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러시아 여성들의 사연은 눈물겹게 비춰지기도 했다. 체제 붕괴와 경제파탄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막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우리로서는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을 부분이 많았다.
＜SC 현장 르포팀＞
이유현 기자 youlee@sportschosun.com
김형중 기자 hkim@sportschosun.com
송원섭 기자 fivecard@sportschosun.com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차병선 기자 ach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