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철도원'] 시골 역장의 인생역정 통해 본 日문화
기사입력 2000년 01월 30일 15시 12분
영화 `철도원'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시대의 인생 의미와 직업관을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뉴 밀레니엄 벽두, 현란한 가치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철도원'이란 일본영화에는 `인생의 무게'가 있다. 물론 한국에도 `서편제' `8월의 크리스마스' `박하사탕'처럼 인생을 다룬 주옥같은 작품이 있지만, 요즘 한국영화의 흐름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후루하타 야스오(66) 감독의 `철도원'은 눈덮힌 설국, 북해도의 어느 종착역 호로마이와 그 역장인 사토 오토마츠(다카구라 켄)의 운명과 인생역정을 담담하게 그린 비망록이다. 딸 유키코와 아내 시즈에를 차례로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안으로 삭히며 세월을 이겨내는 다카구라 켄의 과묵한 연기 스타일은 `순직(殉職)'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비장미와 숭고함 또는 쓸쓸함과 함께 감동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영상은 한폭의 그림을 그리움의 끈처럼 이어놓은 것같고, 음악은 폐부를 찌르는 차가운 아름다움과 같아 보는 이의 가슴을 끝내 북받쳐 오르게 한다.
`철도원'에는 가업승계, 평생직장, 양자를 들이는 미덕, 철저한 장인정신, 사적 가치관과 공적 가치관의 엄격한 구분 등 일본인의 문화적 전형이 잘 녹아있다. 뿐만 아니라 대도시 중심의 소재를 벗어나 오지에 대한 문화적 탐구와 애정, 소멸되어가는 것에 대한 애틋한 정, 직업적인 것과 마니아적인 것의 조화를 꾀하는 영화철학에서 일본영화의 기본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철도원'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로 일본영화 특유의 인정극과 시민극을 함께 아우르는 `휴먼 로맨티시즘'의 압권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4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 1위를 차지한 이 영화는 아사다 지로의 나오키상 수상 소설 `철도원'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다카구라 켄은 제23회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를 놓치는 것은 `감동적인 영화목록'에서 귀중한 것을 빠트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주문: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필히 손수건 준비 바람.)
(2월 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