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석] KBO도 생각을 바꾸자
기사입력 2000년 01월 22일 01시 33분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출범이 난항을 겪고 있다.
8개 구단 선수대표들은 창립총회를 하기로 한 시간에 예정에도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총회 무산을 알렸다. 각 구단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말려 선수들이 총회 참가를 원천봉쇄당한 것이다.
선수대표들은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 보도진과 팬들 앞에서 연신 한숨으로 내뿜었다. 울분을 삭이느라 애를 먹는 듯했다.
예정된 시간에 총회가 열리지 못했으니 일단은 KBO측의 승리로 1차전은 막을 내린 셈이다. 물론 선수들은 "기어이 협의회를 만들고야 말겠다"며 재삼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제 모든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KBO측은 일찌감치 "야구판 해체를 불사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엄포를 놨고, 선수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예정대로 일을 진행시킴으로써 각자의 길을 떠났다.
남은 것은 하나뿐. 오로지 싸움이다. 몇몇 구단에서는 "협의회에 가입하는 선수는 경기에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어떤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에게 "옷을 벗겨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하고 있다.
더 이상 협상으로 타협점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날 KBO는 한술 더 떠 `KBO 폐쇄조치'까지 결정했다고 하니 앞으로 펼쳐질 일은 불을 보듯 훤하다. 이변이 없는 한 파행과 파국의 수순이다.
그렇다면 팬들은 뭔가. 그동안 프로야구판에 뿌린 그들의 열정과 함성과 사랑은 뭐란 말인가. 돈줄을 쥔 기업이야 구단 하나 걷어치우면 그만일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자기네들에게 박수와 관심을 보내온 팬들의 상처받은 마음은 누가 어루만져 주나.
선수들은 이미 밝혔다. "단순한 친목단체이며 불순한 의도는 없다"고. 그리고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갈 것"이라고. 이에 대해 KBO측에선 시기상조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PC통신 등으로 쏟아지는 팬들의 비난을 들어보면 크게 설득력은 없는 모양이다. 이제 한국프로야구는 성년으로 접어드는 열 아홉살이다. 일이 터질 때마다 "아직은…"하며 한국야구를 마냥 철부지로 여기는 KBO측의 시각이 아쉬울 따름이다.
[최재성 기자 kkachi＠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