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양평서장 '러브호텔과의 전쟁' 선포이후 현지르포
기사입력 2000년 01월 21일 14시 54분
세기말 성(性) 담론이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더니 새천년 벽두부터 성이 화두다.
미아리 텍사스촌을 없앤다느니, 양평의 러브호텔을 없앤다느니, 누가 원조교제를 했다느니 시끌벅적하다.
19일 오전 11시. 카페촌과 모텔이 집중된 경기도 양평. 한강 자락을 낀 수려한 자연 경관, 그 사이 들어선 한 모텔 옆 카페.
그랜저도 들어오고 택시, 트럭까지 들어왔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남녀. 부부가 아닌 듯 어딘지 어색하다.
대낮인데도 차에서 내려 모텔로 직행하는 남녀들. 2∼3시간 동안 10여쌍이 오갔다. 남성의 나이는 40대에서 50대가 대부분이고 60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성은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쯤의 여성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40대 중반쯤이 대다수인 게 특징.
P카페 여주인 A씨(39)는 "지난해 처음 카페를 인수한 후 정말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90% 이상이 중년 커플들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유부남과 처녀가 바람을 피우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더라구요. 40대 중반이 대부분이에요. 손님은 아침부터 오기 시작하는데 평일, 그중에서도 금요일이 피크에요."
강변따라 줄줄이 이어진 모텔의 사정은 거의가 대동소이한 편.
정작 가족단위로 와서 방을 잡기에 민망한 형편.
카페주인 A씨와 친한 고객 B씨가 왔다. 그 옆에는 C씨.
B씨는 41세의 남성. 파트너 C씨는 4살 연상인 45세 여성. 물론 각자 가정이 있다.
마치 정다운 오누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두사람은 처음엔 말이 없었으나 분위기가 무르익자 속 얘기를 꺼냈다.
"죽을 각오 하고 이 사람을 만나요. 이 사람이 없었으면 진작 죽고 싶었을 겁니다. 제겐 삶의 윤활유 같은 사람이에요." C씨의 말.
섹스가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1주일에 3∼4번은 얼굴이라도 봐야 살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남편과는 10여년전부터 찬바람 쌩쌩 도는 한지붕 남남. 그럼 왜 이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결혼할 나이가 된 자식에게 편부, 편모 슬하라는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이렇게 산다"고 말했다. 남편 역시 다른 여자들과 만나는 것도 오래전에 시작됐다.
그러다 우연히 동생같은 B씨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인생을 얘기하는 친구가 됐고, 어느 사이 연인이 됐단다.
"남들은 불륜으로 보겠지요. 용납이 안되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사랑합니다." 묵묵히 듣던 B씨가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가정을 깰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얘기가 길어져 저녁 6시가 다됐는데도 여전히 쌍쌍의 커플들이 오갔다.
"부부가 진정 사랑하면 불륜이 안 생길텐데 왜그런지 모르겠어요." 카페주인 A씨의 평범한 한마디에 고통받는 `가정붕괴'의 희생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이화순 기자 may＠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