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음모 (24)
기사입력 2000년 01월 18일 13시 52분
이대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말해라."
"김경희는 중국여권으로 반도호텔에 투숙하고 있습니다."
"그건 내가 말해준 것 아닌가?"
"글쎄 기다려 보십시오."
이맛살을 찌푸린 강영식이 이대진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은행 두곳에 한영희와 조정숙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1억5000만원과 2억원 가까운 돈이 예금되어 있습니다. 어제도 일동은행에 가서 조정숙의 통장으로 3000만원을 찾아놨습니다."
강영식이 탁자 위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열흘 동안 그 여자가 만난 사람들의 내역입니다. 3명은 기관의 감시가 심해서 놓쳤지만 모두 추적해서 기록했습니다."
"수고했다."
서류를 집어든 이대진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혹시 이 라운지 안에 우리를 감시하는 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
"오늘은 없습니다."
강영식이 이대진의 시선을 따라 라운지를 @어보며 말했다.
"가끔 형님은 국정원 요원들의 감시를 받더군요."
"감시가 아니라 경호를 받고 있는거다."
"형님이 VIP인줄은 압니다."
정색한 강영식이 눈으로 이대진이 쥐고 있는 서류를 가리켰다.
"서류를 자세히 보십시오. VIP들이 여럿 있으니까요."
오피스텔로 돌아온 이대진은 윗도리만 벗어 던지고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펼쳤다. 김경희가 만난 인사들이 날짜와 시간별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모두 사고까지 첨부되었다.
강영식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꼼꼼하게 일처리를 한 것이다.
서류의 두번째 페이지를 넘겼던 이대진이 문득 몸을 굳혔다. 사진에 찍힌 사내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대성건설의 양일주 사장이다.
작년에 해주에 대규모 남북합작공단을 건설한다고 했다가 요즘은 지지부진한 상태가 되어 있었지만 대성건설은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것이다.
양일주와 김경희는 일식당의 방에서 같이 나오는 장면이 찍혀져 있었는데 식당 밖으로는 각기 혼자서 나오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에 나타난 시간을 보자 김경희가 5분 후에 나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동안 사진을 내려다보던 이대진은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당 국회의원 홍달성의 사진이 보였다. 어두운 분위기의 테이블에서 그는 김경희와 마주앉아 있었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김경희에게 말을 하는 모습이다.
어깨를 늘어뜨린 이대진은 길게 숨을 뱉었다. 홍달성은 3선 의원으로 당의 재정위원회 소속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생각에서 깨어난 이대진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 강영식한테서 받은 서류를 보고계십니까?"
김재선이다. 퍼뜩 눈을 치켜떴던 이대진이 곧 쓴웃음을 지었다.
"왠지 김부장님 목소리를 들으니까 가슴이 가라앉는데요."
"놀라셨지요?"
"혼란스러워요.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러시겠지요."
김재선이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도 이과장님이 강영식한테 용역을 주신 걸 알고 고심을 했지요. 그리고는 아실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강영식이 이만큼 일을 해낸 것은 국정원이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대진의 가슴이 더 개운해졌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