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러브호텔 간 여성의 해프닝
기사입력 2000년 01월 16일 15시 20분
일본 성인의 날은 한국과는 달리 정부기관의 주도아래 성대하게 치러진다. 특히 만 20세가 되는 여성들은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구(區)가 지정한 식장에 참석한다. 때문에 이날은 온통 거리가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20세의 여성들로 넘쳐난다.
또 웬만큼 사는 가정에서는 부모가 어른이 되는 딸에게 예쁜 기모노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자매가 있는 집에서는 언니의 기모노를 물려입기도 하고,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기모노 대여점에 가서 하룻동안 빌려 입는다. 기모노의 대여비는 기모노의 가격에 따라 천차만별을 이룬다. 몇 천엔에서부터 몇 만엔, 수십만엔까지 하는 고급 기모노도 있다.
이렇듯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그들의 설날인 1월 1일이나 추석인 8월 15일보다 1월 10일 성인의 날에 기모노를 더 많이 입는다. 명절보다도 더 큰 축제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성인식이 끝나면 일제히 시내로 나와 그들만의 파티를 연다.
이 때 대부분의 신참성인들은 고교 때나 학창시절의 은사를 초빙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은사도 이날만은 기꺼이 참석하여 어른이 된 제자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2차를 갈 때쯤이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준다. 한국의 고3학생들이 졸업식을 마치고 시내로 몰려나와 밤새도록 마시고 떠들며 젊음의 향연을 벌이는 것과 흡사하다. 집에서도 이날만큼은 늦은 귀가와 외박을 눈감아준다.
덕분에 이날 가장 특수를 누리는 곳은 술집과 러브호텔.
"원래 러브호텔은 예약을 받지 않아요. 그런데도 예약이 밀려요. 분위기 좋고 깔끔한 도쿄 근교의 러브호텔은 아예 빈방아 없을 정도죠. 많은 사람들이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아케부쿠로에서 러브호텔을 경영하고 잇는 재일동포 Y씨의 말이다. 해마다 성인의 날이면 기모노차림의 여자손님들로 방이 꽉 찬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연휴때문이란다.
평소 세심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 Y2K문제 때문에 연말연시 기간을 그야말로 `방콕'만 한 것이 억울했던지, 마침 성인의 날이 월요일로 연휴가 되자 일제히 해외로 빠져 나간 것이다. 더구나 여행을 하기 위해 겨울 방학 동안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던 20세의 젊은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가방을 챙겨들고 일본을 빠져 나갔다.
당연히 성인의 날 행사에 참석한 젊은이들의 수는 급감하고, 덩달아 해마다 특수를 누려오던 러브호텔도 한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날 러브호텔에서 온갖 해프닝이 다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평소에 입지 않던 기모노를 입었으니 한 번 벗고 다시 입을 때는 당연히 입는 방법을 모를 수 밖에. 하긴 나도 그랬어요."
이날 마침 아는 이의 딸이 성인이 되어서 선물(대개 친한 사이에는 축하의미로 선물을 한다)을 주려고 그 집에 갔을 때 내게 들려준 말이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성인식이 끝난 후 러브호텔에 갔는데, 문제는 집에 돌아오려고 기모노를 입으려니까 오비(한복의 옷고름같은 것인데 매우 복잡하여 혼자 매는 것이 어렵다. 실제로 요즘에는 이 오비를 못매는 젊은 여성이 부쩍 늘었다)매는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더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남자친구는 더 몰랐다. 하지만 기모노는 오비를 안 매면 그대로 옷자락이 흩어지므로 그냥 밖으로 나갈수도 없었다.
"그 때 생각하면 아찔해요.밤새도록 오비와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그 날밤 호텔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남자친구가 호텔주인한테 가서 사정을 말한 다음 나이든 아줌마가 와서 겨우 오비를 맸어요. 그런데 그 아줌마가 오비를 매주면서 뭐라고 말한 줄 아세요? 어제 오늘 오비 매는 게 몇 번째인줄 모르겠대요,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딸만큼은 어렸을 때부터 오비매는 법을 철저하게 가르쳐 줬다고 했다. 그래서 그 날 딸이 설사 남자친구와 러브호텔을 간다해도 자신과 같은 해프닝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이튿날 재일동포 Y씨에게 물어봤다. 역시 그의 대답은 올해에도 손님의 오비를 매줬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