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진수 '몰락위기 공연예술 급한불 먼저 꺼라'
기사입력 2000년 01월 12일 14시 12분
연극계가 불황이라는 긴 터널속에 갇혀 있다. 대학로 극장안에는 찬바람이 쌩쌩 분다.
`연극계에 언제 호황이 있었느냐'는 자조섞인 말도 있지만, IMF 이후 상황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는 게 연극계의 공통된 현실인식이다.
공연예술을 대표해온 연극. 과연 위기를 돌파할 타개책은 없는가? 현재의 실태와 대책에 대한 연극인들의 육성을 들어본다. X편집자 주〉
연극이 죽어가고 있다.
유료관객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대학로의 소극장은 바깥 날씨보다 더 얼어붙어 있고, 뮤지컬 등 대형 공연물 제작자들은 작년 한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크게는 수억원까지 빚방석에 앉았다.
공연 편수도 현저히 줄었다. 그나마 작년에 정부가 20억원의 특별지원을 베풀지 않았던들 그 수는 더 줄었을 것이다.
그중에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배우집단이다. 지난 연말 한국연극배우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의 배우들의 연간 연극을 통한 소득이 500만원 이하였다고 한다. 월급을 받는 국공립단체 배우들을 빼고 비회원 배우들을 포함한다면 그 수치는 95%에 육박할 것이다. 그중 절반은 1년 내내 단 한편의 연극에도 출연하지 않은 연극소득 `제로'에 속한다.
최근 한국영화는 IMF사태에도 급신장세를 보이고 있다는데 연극은 어찌하다 이 지경이 됐는가.
과거 영화보다 더 잘나가고 공연예술 가운데서도 가장 생명력이 강하고 그래서 유료관객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연극이 IMF 파고에 이렇게 힘없이 무너진데는 연극인 자신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일부 연극인들의 무사안일주의는 이미 닥쳐온 21세기 환경에 대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책임의 소재를 떠나 연극은 살려야 한다. 이제 연극의 위기는 연극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극이 지난 20세기 한국예술의 전위 역할을 담당했다면 21세기 첨단 영상시대의 든든한 후위를 맡아야 한다. 연극은 무엇보다 인간을 섬기는 기초 분야이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걸친 각고의 자기 희생을 통해서 기량을 연마한 연극배우들만 해도 소중한 고급 전문인력이다. 이들의 재능을 사장시키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다.
최근 문화관광부는 `2000년 공연예술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어느 때보다 공연예술의 발전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 그러나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당장의 위급한 상황을 타개할 긴급대책을 마련하고 연극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
이미 책정한 예산의 운용과 그동안 공들여 개정한 법 집행을 서둘러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공연예술이 죽으면 21세기는 결코 문화의 세기가 될 수 없다.
정진수[연출가, 성균관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