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방배동 방림시장 상가건물 15년째 제비 안식처
기사입력 1999년 05월 14일 14시 30분
언제부턴가 대도시에선 제비 보기가 호랑이 만나는 것만큼 힘들어졌다.
그러나 서울의 한 상가 건물은 15년째 제비가 빼놓지 않고 찾아와 화제가 되고 있다.
`강남 제비'들의 보금자리는 바로 서초구 방배동 방림시장 상가 건물.
이곳 상가 2층 복도를 걷다 보면 `물찬 제비'들을 만날 수 있다. 카바레 들락거리는 말썽꾼 `제비족'이 아니라,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날아온 진짜 제비다.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제비집도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이 상가에는 묘하게도 해마다 4월 말쯤이면 3∼4쌍의 제비 커플이 날아와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키운다는 것.
그러다 새끼제비들이 성장하는 늦가을이 되면 온가족이 떼지어 남행열차를 타고 떠난다,
이 상가의 관리소장 천승수씨(56)는 "우리 상가에 제비가 오면 봄도 함께 오며, 제비가 돌아가면 겨울이 어김없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올해도 두쌍의 제비가 둥지를 틀었다.
상가 입구 계단쪽 제비 커플은 벌써 4마리의 새끼를 낳아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먹이를 실어나르고 있다.
또 복도 안쪽의 커플도 열심히 알을 품고 있는 중이다.
제비들이 이 상가를 `고향'으로 삼은 것은 상가 상인들의 정성과 보살핌 때문이다.
상인들은 둥지 주변을 깨끗이 청소해주고, 행여 둥지의 새끼가 밖으로 떨어질까 보호대도 만들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밤에도 제비들이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도록 화장실 창문을 모두 열어 놓는다.
한 여름 더위에 제비들이 힘겨워하면 건물안 문을 모두 활짝 열어 두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박씨를 물어와 은혜를 갚는다는 제비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곳 상가에선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단다.
실제 상가 2층 난간에서 사고로 세사람이나 떨어진 일이 있지만 그 때마다 모두 무사했다는 것이다.
조류보호협회 깅성만 회장은 "제비는 환경이 좋을 경우 매년 같은 둥지를 보수해서 사용하는 습성이 있다"며 "상인들의 정성이 있는 한 방배동 제비는 해마다 상가를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임태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