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유치막후비화]한국본선 투혼에 지구촌 열광
기사입력 1999년 05월 03일 14시 59분
94년 5월에 FIFA부회장으로 선출된 나는 2002년 월드컵 유치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한달후인 6월17일부터 94 미국 월드컵이 열렸다.
한국은 16강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스페인, 볼리비아, 독일과 선전하여, 국민들을 열광 시켰다.
강호 스페인과의 첫 경기가 2대2로 끝나자 전세계가 열광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로스엔젤리스에서 열린 우리측의 월드컵 유치리셉션에서 나를 만나자, "한국이 이긴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경기인 볼리바이전도 0대0으로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심판이 재량에 의한 시간 연장을 8분36초나 끌은 것도 기록이었다.
이 때문에 연장시간 예고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세번째 경기인 독일전은 전반에 3대0으로 졌다가, 후반에 우리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해 3대2까지 추격했다.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 명승부였다.
뉴욕의 어떤 택시 운전사는 나에게 "한－독전이 제일 재미 있었다"고 말했다.
전세계에 한국 축구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었는데, 이것은 유치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회기간중 시카고에서 FIFA 총회가 열려 우리에게 유리한 규약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때까지는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 할 때, 유치신청국은 집행위원국이라 할지라도, 당사자라는 이유로 결정 절차에서 제외되고 투표에도 참여 할 수 없었다.
이 규정이 삭제되어, 당사국도 투표할 수 있게 돼 우리의 유치 활동에 명분과 도움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도 월드컵 유치에 회의적인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주한 영국 대사가 어떤 체육계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월드컵 준비는 잘 되어 가느냐"고 묻자, "It's a joke.(웃음꺼리 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영국대사는 화가 나서 주변에 전해,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어떤 영국기자는 우리나라에 와 있는 친구에 편지를 보내, "Watch your back at home.(내부에 있는 적을 조심하시오)"라고 조언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난 문제가 밖으로부터 닥쳐오고 있었다.
95년 5월 스위스 취리히의 FIFA하우스에서 집행위원회가 열렸는데, 이때 처음으로 "개최지 조기 결정론"이 표면화 된 것이다.
원래 2002년 월드컵 개최지는 96년 6월에 결정하기도 미리 못박혀 있었는데, 이것을 1년 가까이 앞당겨 조기 결정하자는 것.
표면적인 이유는 "한－일간의 유치 경쟁이 과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출국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 직전, 회의 안건속에 이 조기 결정안이 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회의가 열리기 전에 볼래터 당시 사무총장의 방에 들러 그런 안건이 상정 될 예정인지 물어 보았다.
그는 조기 결정안에 대한 한국의 의견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모든 일은 규칙에 의해 정해진 대로 하는 것이 옳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알겠다. 일본측도 반대하는 것 같다"면서 안건에서 삭제하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회의는 9시부터 시작됐다.
오후 1시쯤 되어 아벨랑제회장이 개최지 조기 결정 안건을 상정했다.
다른 집행위원 한사람이 질의 했다.
"회장, 개최지 결정을 그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회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회장이 뭐라고 하면 감히 반대 의견은 물론이고 질의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반대 의견이나 질문은 도전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였고 이의가 있더라도 우물우물 넘어가기 일쑤였다.
회장은 질문이 나오자 당황한 듯,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대답했다. [월．화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