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로] 10주기전 조선일보 미술관서
기사입력 1999년 03월 31일 15시 07분
동양정신을 유럽에 전파한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거장. 묵죽화에서 산수화, 수묵추상, 문자추상, 인간 연작 등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실현한 예술가.
이런 그를 프랑스에선 `매트르'(MAITRE 대가)로 부르고, 퐁피두센터도 그의 작품을 13점 구입, 소장하고 있다. 한국작가로는 가장 많은 숫자. 전세계 미술관 소장작품수는 600여점에 이른다.
그러나 질곡의 20세기를 살았던 그는, 작곡가 윤이상처럼 세계무대에서 자랑스런 한국예술가로 살았으되 조국으로부터 금기작가란 훈장(?)만 받고 타향에서 숨진 비운의 예술가로 기록된다.
1989년 1월 10일 호암갤러리에서 19년만에 마련된 회고전 개막일 아침. 동베를린사건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었다는 이유로 직접 귀국하지 않았던 고암은 그날 그를 기다리던 관계자들에게 `부음소식'을 대신 알렸다. 갑작스런 심장마비였다.
그리고 10년.
IMF 한파속에 예정보다 늦어진 고암 10주기전이 2일부터 22일까지 가나아트센터(02－720－1020)와 조선일보사 미술관(02－724－6328)에서 대규모로 펼쳐져 고인의 넋과 예술혼을 기린다.
고암의 산수화 수묵추상 종이꼴라쥬 문자추상 군상 연작 등 미공개작 중 대표작 180여점이 소개된다.
부인 박인경 여사와 양아들 이융세씨의 작품도 다섯점씩 나오고, 고암이 64년 파리에 세운 `동양미술학교' 출신 제자 가엘 마떼이, 쟝 빌르루 등 20명의 작품 30여점도 출품돼, 고암이 유럽에 뿌린 작가적 영향력과 미술교육자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일본과 파리, 국내에서 각각 제작한 고암의 다큐멘터리 필름 다섯가지가 소개되고, 윤범모 정형민 홍선표 김복기씨 등이 6일, 8일, 13일, 16일 차례로 특별강연을 가져 고암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박인경여사는 개막에 맞춰 내한했고, 고암의 유럽 제자 18인은 18일 내한, 20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고암은 평생을 도전의식속에 살면서 동서양과 남북한의 장벽을 뛰어넘었다. 50대중반 안정된 이화여대교수직을 박차고 프랑스로 떠난 이후엔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를 도기합일(道器合一)로 풀어냈고, 사형선고를 받고 2년반 감옥생활속에서도 창작을 불태웠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본격적인 `군상' 연작을 제작했고, 말년인 87년엔 평양, 89년엔 서울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어 통일을 꿈꿨다.
평론가 윤벙모씨는 "20세기 우리 미술사에서 고암처럼 굴곡이 많으면서도 우뚝 솟은 화가도 흔치 않다. 도전의식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항해했다."고 평한다. 입장료 어른 2천원, 어린이 1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