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전여옥-이혼도 때론 힘이 되리
기사입력 1999년 03월 30일 15시 03분
내가 아는 친구가 이혼을 했다.
따뜻한 한끼라도 나누고 싶어 친구랑 나랑 그애를 불렀다.
그간 얼마나 큰 고통 끝에 내린 결단인지를 알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식사를 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아는 듯한 말간 얼굴로 그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수저를 뜨다 `점을 봤어'라며 꽤 이름있는 이에게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워낙 호기심이 강한 나는 `그래, 뭐라고 하던?'라고 눈을 빚내고 물었다.
`응, 나보고 참 무던히도 참았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았냐고 했어.'
나는 그말을 듣고 그애의 사정을 아는지라 `정말 그렇다, 얘'하고 속없이 그 점장이 참 용하다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함께 있던 언제나 현명한 친구는 날카롭게 한마디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이혼을 했어?'라고.
그 질문에 내 친구는 모처럼 웃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 점장이가 그러대, 부부가 안맞으면 돈도 안모이고 하는 일마다 되지 않고 자식도 안풀리고 그런대. 내가 결단을 내리는데 도움은 됐다고 할 수 있지'
`정말 그렇다 얘'라고 다소 논리적인, 그렇지만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그 점장이(?)에 말에 우리 셋은 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나는 또 한사람의 이혼이라는 큰 고통을 겪었던 선배를 떠올렸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인간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존하고 싶어한다.
작게는 `신기'가 내린 점술가를 찾기도 하고 종교에 몰입하기도 한다.
그 선배는 그렇지 않았다.
`이혼이라는 내 한계를 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는 오히려 한가지를 깨달았어. 이 세상에 믿을 것은 오로지 나밖에 없다고, 그 어느 누구도 나를 나처럼 잘 알 수 없다고. 누구보다도 내 일은 내가 가장 잘 알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어.'
나는 고통이야말로 좌절이야말로 얼마나 인간을 강인하게 하는지를 그 선배를 통해 깨달았다.
요즘 주변의 이혼이 많다.
실직과 좌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일상화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점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실직한 사람들이 역술을 배워 점술가가 되는 것이 유행아닌 유행이다.
불행한 사회는 앞이 안보이는 사회이다.
더구나 세기말의 거부할 수 없는 불안이 우리 사회에 떠돌고 있다.
이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지금 이런 때야말로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