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식당-다방등에 걸린 '이발소그림'찾아 10년
기사입력 1999년 01월 26일 14시 26분
박석우씨(36．서울 중산고등학교 미술교사).
그는 지난 10년간 전국방방곡곡의 이발소를 기웃 거려왔다. 경기 동두천 송탄 의정부, 서울 이태원 용산 삼각지 등 미군기지촌도 단골 출입처였다.
왜? `이발소 그림'을 모으고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발소 그림'이란 이발소, 식당, 다방, 가정집, 관공서 등지에 걸려있는 상화(商畵)를 줄잡아 통칭하는 용어.
그는 이 방면에선 국내 유일의 전문가다. 인천대 미술교육학과, 대학원을 거치면서 관련 논문으로 첫 석사학위를 받았고, 직접 패러디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수집한 상화와 슬라이드가 합쳐서 수만장.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에서부터 호랑이, 복돼지그림, 백두산그림, 김창율의 물방울그림 모작 등에 이르기까지 수두룩하다.
왜 제도권 미술인들이 멸시하고 외면하는 이발소그림에 그토록 애정을 보이는 걸까.
"`이발소 그림'은 철저히 대중을 위한 살아 유통되는 그림들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그 시대 대중의 애환과 기원, 시대 흐름, 정서 등을 읽을수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연구해야할 장르라 봅니다."
그자신 경기도 화성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이발소 그림'을 좋아했던 데다가, 80년대 성완경 민정기 임옥상씨 등 당시 민중미술계의 대부들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이발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대중미술도 대중가요와 대중문학처럼 활발히 연구되어야지요. `이발소 그림'은 오늘날의 민화(民畵)입니다. 그중에서도 혁필화(革筆畵)나 동물그림 등은 전통 민화를 정서적으로 이어받은 그림이지요."
무명화가들이 똑같은 그림을 복제하듯 그려내는 것을 비롯, 색상이 화려하고, 철저히 대중의 정서, 감성, 기원, 시대상 등을 반영한 면에서도 민화와 이발소그림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그가 내보이는 화첩엔 수많은 이발소 그림 사진이 꽂혀있다. 복돼지 호랑이 등 기복신앙을 담은 동물화, 울긋불긋한 혁필화, 인두화, 토속적인 풍경을 점묘화법으로 담은 쫑쫑이 그림, 주한 외국군인들의 주문 미술품인 흑인예수와 제자가 주인공인 최후의 만찬 등….
박씨는 전통민화처럼 맥이 끊길지 모를 이발소그림의 자료관 건설과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화공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단다.
그의 이발소그림 얘기는 다음달 중순께 책 `한국의 이발소 그림'(동연출판사)으로 선보인다. 또 박씨와 갤러리사비나(대표 이명옥)의 공동기획, 예술의 전당, 갤러리사비나 공동주최로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이발소 그림전'으로 15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발소그림의 첫제도권 나들이인 셈이다.
[이화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