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세상] 불행 날려보낸 하얀 웨딩드레스
기사입력 1999년 01월 10일 15시 11분
1999년 1월 24일.
일반 직장인들에게야 그저 집에서 하루 푹 쉴 수 있는 대수롭잖은 일요일.
하지만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사는 주부 최태심씨(50)에게 만큼은 아주 각별하다.
평생을 기다려 온 날이다.
어쩌면 자기와는 영영 인연이 닿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까지 여겼던 바로 그 면사포를 쓰는 날이다.
`한국 결혼문화 복지연합회'에서 무료로 합동결혼식을 올려준다는 얘기를 듣고 신청서를 내 운좋게도 선착순(200쌍) 안에 들었다.
정초부터 소원을 풀었으니 그 기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최씨의 마음이 새털구름처럼 가볍지만은 않다.
오랜 세월 가슴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 온 한(恨)이 자꾸만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다.
열아홉에 남편을 만나 동거하면서 겪은 생활고.
소중하게 얻은 딸이 심장판막증으로 20년간 앓기만 하다 먼저 간 천붕지괴의 고통.
남편에게 들이닥친 위암과 대장암.
말마따나 운명의 장난치고는 너무도 가혹했다.
늘 꼬이기만 했던 그녀의 인생 50년.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99년 들자마자 자그마치 30년을 기다려 온 파랑새가 날아 들었으니 마침내 운명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 셈이다.
어쩌면 이번 행운이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신호탄인 지도 모를 일이다.
오는 24일 오후 1시, 서울 보라매공원 구민회관.
최씨는 곱게 신부화장을 하고, 꿈에도 그리던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입장한다.
너무 좋으면 눈물이 난다던데….
[최재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