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지구촌] (20)화려한 결혼식
기사입력 1998년 05월 14일 15시 16분
바탁족들은 수마트라섬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수마트라의 주도（洲都）인 메단을 출발해 고산지대인 버라스타기에 이르면 전설속에 나오는 주술사의 집들처럼 신비롭게 생긴 집들이 나타난다.
초승달 모양의 지붕과 양쪽 끝을 뾰족하게 치켜세운 전통 가옥들이 볼수록 시원스럽고 아름답다.
링가 지역의 바탁족 마을엔 지은 지 2백50년이 넘은 전통 가옥들이 버티고 있다.
네모진 나무기둥 위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이 그처럼 오래 견딜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나무 기둥들은 주춧돌 위에 그냥 얹혀져 있고 쇠못을 단 한 개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완충 작용 때문에 웬만한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마트라 북단, 시마닌도 민속박물관에선 매일 오전 두차례씩 바탁족들의 민속 공연이 펼쳐진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전통 옷차림의 원주민들이 탄생과 결혼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술적으로 풀어가며 춤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출한 박물관의 민속 공연보다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풍속도가 훨씬 더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탁족의 결혼식이다.
결혼식은 주말마다 어김없이 마을회관에서 치러진다.
바탁족의 결혼식은 전세계에서 가장 길고 화려할 것이다. 그들의 황금빛 결혼식은 하루 종일 걸린다.
신랑과 신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붉은색과 금빛으로 치장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신랑의 두건과 신부의 커다란 원형 모자엔 금빛 장식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마치 왕족의 결혼식으로 혼동될 정도다.
하객들의 옷차림도 다채롭고 화려해 바탁족의 성격이 밝고 정열적임을 말해준다.
남자들은 인도인들의 터번처럼 생긴 알록달록한 두건을 쓰고 있으며, 여자들은 금빛 수를 놓은 블라우스와 치마를 즐겨 입는다.
필자가 바탁족 마을에 들렀을 때도 마침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식 풍경을 찍기 위해서 필자가 약간의 축의금을 전달했더니 하객들은 물론이고 신랑 신부까지 고맙다는 표시로 경쟁하듯 술을 권했다.
발 디딜 틈없이 운집한 하객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때문에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신랑 신부는 무대 중앙의 좌석에서 하루 종일 꼼짝않고 앉아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몹시 고통스럽고 답답할 테지만 어른들의 덕담과 친지들의 축하 인사를 받을 때마다 연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아침부터 시작된 예식은 해가 저물어야 끝났다.
결혼식 내내 쉴새없이 술과 음식이 제공되기 때문에 하객들은 이곳에서 먹고 마시며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