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지구촌] (17)외지인 사랑하면 추방
기사입력 1998년 05월 08일 14시 39분
전설 속에 나오는 신비의 부족처럼 활화산 주변에서 칩거(?)하고 있는 퉁거족은 누구인가.
그들의 뿌리를 찾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바섬에서 번성했던 힌두 왕조인 마야파힛 제국과 만나게 된다.
16세기 무렵, 호시탐탐 자바지역을 노리고 있던 이슬람 세력은 번영을 누리고 있던 마야파힛 제국을 침략해왔다.
이슬람 세력에 밀려 멸망한 힌두 왕조의 백성들 대부분은 발리섬으로 도피했으나, 극히 일부는 미처 자바섬을 떠나지 못했다.
자바에 남아있던 소수의 힌두교도들은 화산이 있는 브로모 고지대로 올라가 `작은 힌두 왕국'을 세웠는데, 그들이 바로 퉁거족의 조상인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을 받아 화산지대로 피신했던 아픈 역사 때문인지, 퉁거족들은 아직도 외지인들을 경계하면서 그들만의 혈통을 지켜가고 있다.
퉁거족은 관광객들을 위해 조랑말을 빌려주거나 숙소를 제공하지만, 순수 관광 목적이 아닌 외지인들의 접근은 철저하게 막고 있다.
퉁거족은 설령 브로모 화산을 구경하러온 여행자라 하더라도 열흘 이상 머물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퉁거족이 이토록 외지인들을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작은 힌두 왕국'의 후예들은 임을 자부하고 있는 5천여 퉁거족들은 외지인들과 피를 섞는 것을 터부시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외지인과 눈이 맞아 사랑에 빠지는 퉁거족은 그 길로 브로모 지역을 영원히 떠나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브로모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경계의 눈길을 풀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본 것은 딱한번 뿐이었다.
우리 일행중에 누군가가 식탁에 놓인 손씻는 물을 엽차인줄 알고 홀짝 마셔버리자, 식당 종업원들이 폭소를 터트렸던 것이다.
브로모에서 겪었던 두번째 해프닝은 퉁거족의 이상한 관습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는 방마다 여러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고, 모르는 남녀끼리라도 혼숙(?)이 가능한 여인숙 수준이었다.
침대 사이로 늘어뜨린 커텐이 칸막이 구실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공동 화장실이었다.
공동 화장실에는 물이 졸졸 흐르는 수도꼭지 밑으로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만 놓여있을 뿐, 화장지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남녀 가릴 것없이 용변을 보고나면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의 물로 뒷처리를 하고 나올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먹을 땐 오른 손을 쓰고, 화장실에서 뒤를 씻어낼 땐 반드시 왼손으로 하는 게 퉁거족의 전통이요 예절인 것이다.
이런 관습을 모르고 우리 일행 중 또 한사람이 실수를 저질렀다. 꼬마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던 그가 귀엽게 생긴 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을 때 뒤에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용변 뒤처리에 사용하는 불결한 왼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만졌으니 망신을 당해도 싸지 싶었다.[다음은 바탁족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브로모 화산 아래에 있는 조랑말 투어 종착역. 사막쪽으로 힌두 사원이 보인다.
유황 연기를 내뿜는 브로모 화산. 퉁거족은 화산에서 나오는 굉음을 `절대자의 거친 숨소리'로 여기며 두려워 한다.
5천여명의 퉁거족이 사는 브로모 일대는 해발 2,200@의 고산지대여서 밤이면 아주 춥다. 아침 해돋이를 보려고 브로모 화산으로 가는 여행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