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 풍속사] (76)'티켓다방'
기사입력 1998년 04월 28일 14시 14분
["죄송해요. 배달이 밀려서."
정양은 사내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차를 준비하여 사내들에게 돌렸다. 찻잔을 받아든 사내들이 차를 소리없이 받아마시자 정양은 긴장이 풀린듯 주인 등 뒤에 선채 아직도 가쁜 숨결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때 주인 사내가 정양을 힐끗 쳐다보더니
"너 왜 흥분했냐?"
하고 물었다. 그의 물음에 정양이
"네 흥분했어요"
하고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채 농담처럼 대꾸했다. 그러자 사내가 독소를 퍼붓듯 말을 이었다.
"너 우리집에 피풀（개）이 발정이 났는데 한번 붙어볼래?"
하고 물었다. 사내의 말에 정양은 현기증이 일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내의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풀이라면 그가 키우던 개였다. 인간 이하로 취급되고 있다는 절망감과 혐오감이 그녀의 지친 육신을 휘감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정양은 가까스로 정신을 되찾았다.
"…사장님."
정양은 자신도 모르게 사내를 불렀다. 사내가 되돌아보면서 뭐냐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사장님 저 생각하지 마시고요, 사모님하고 한번 붙여보시지 그래요. 피풀이 힘좀 쓰게 생겼던데요."]
윤 산의 소설 `블랙커피'의 한 부분이다. 다방 여자들은 정양 등 익명으로 등장한다. 아무도 본명을 궁굼해하지 않는다. 다방에서는 마담이고 레지고간에 죄다 매춘을 한다.
현장고발소설인 이 작품은 살（肉）의 세계를 보여준다. 다방주인마저 이렇게 한탄한다.
[사내들이 휘젓고 다니는 곳에 여자의 육체는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 썩은 생선토막이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인은 마담이 여관으로 배달을 떠나자 다방에 죽치고 앉아 있는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동물적인 표정 뿐이다. 단조롭고 향기없는 머리속에는 퇴폐적인 생각만을 담은 잡초들 뿐이다.]
소설에서 작가의 변신인 듯한 형구 또한 이렇게 한탄한다.
[우리의 잘못된 차문화, 동양권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차문화에 전통과 품위와 자존심을 걸었던 반면 우리의 차문화는 퇴폐와 향락적으로 변모를 해왔던 것이리라.（중략）기생문화가 사라지고 신종 화류계업으로 나타나는 다방업종의 작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도덕적 가치가 기틀없이 흔들리고 물질만능적인 시대가 화류계의 신업종을 성업으로 이끌어갔는지도 모른다.]
티켓다방이 갈수록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와중에 서울 구로공단 가리봉5거리에 가출소녀를 위한 휴식공간이 마련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새날을 여는 청소년 쉼터'（02-867-1255）에는 티켓다방에서 일하던 소녀 등 청소년 아닌 청소녀들이 휴식하며 학교나 가정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부디 이런 곳이 많이 생기기를. 그전에 티켓다방이 먼저 없어지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