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16)
기사입력 1998년 04월 17일 14시 40분
얼굴을 굳힌 모리스가 힐끗 뒤쪽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린 사내 하나가 그를 향해 소음기가 끼워진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핫산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유감이야. 모리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핫산, 날 이런식으로 배신 하다니."
모리스가 그를 노려보았다.
"네 놈들을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잘가게. 모리스."
그리고는 핫산이 부하에게 눈짓을 했다. 쏘라는 표시였다.
그 순간이었다. 부하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면서 눈을 치켜 떴는데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손에 든 권총을 떨어 뜨리면서 털썩 무릎을 꿇더니 앞으로 엎어졌다.
놀란 핫산이 가슴에 찬 권총 홀더에서 리볼버를 꺼내 쥐었다.
그러나 곧 어깨를 움켜쥐면서 쥐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렸다. 모리스는 몸을 날려 건물쪽으로 뛰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가 허덕이며 건물의 모퉁이에 붙어 섰을때 벤츠 쪽에서 서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뛰어 나왔던 운전사도 핫산 옆에 누워 있었는데 죽은것 같았고 핫산만이 겨우 상반신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모리스는 가쁜 숨을 가누면서 앞쪽을 둘러보았다. 도로는 삼백미터쯤 전방이었고 주위는 낮은 모래구릉 뿐이다.
그 순간 그는 모래구릉 사이로 나타난 세 사내를 보았다.
거리는 거의 이백미터가 되었으므로 그저 형체만 보일 뿐이다. 모리스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뒤쪽은 바다여서 나갈 길도 없다.
핫산도 그들을 본 모양인지 팔을 뻗어 떨어진 권총을 집었는데, 그 순간 권총 앞쪽 이십센티도 안 되는 곳에서 흙먼지가 치솟아 올랐다.
다가오는 사내들이 쏜 것이다. 손을 움츠린 핫산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사내들은 느린 속도로 다가 왔으므로 모리스는 그동안 세번이나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윽고 거리가 삼십미터쯤으로 좁혀졌을때 모리스는 사내들이 모두 동양인인 것을 보았다.
가운데에 선 사내는 망원렌즈가 달린 저격용 장총을 쥐고 있었다.
핫산의 앞으로 다가선 사내가 땅에 떨어진 권총을 집었는데 장총을 쥔 사내는 총구를 모리스쪽으로 겨눴다.
"모리스, 이리 나와！"
이를 악문 모리스는 건물 귀퉁이에서 나왔다.
모리스가 그들 앞에 서자 단단하게 생긴 사내가 권총을 모리스에게 겨눴다.
"모리스, 넌 우리가 목숨을 구해준거야. 우선 그것을 기억해라."
그가 총구로 핫산을 가리켰다.
"이자는 누구냐?"
모리스는 영어 억양으로 그가 일본인인 것을 알았다.
"당신은 일본 정보국요원인가?"
"내가 묻는 말부터 대답해！"
사내가 버럭 소리치자 모리스가 핫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심 하마니파의 재정담당 압둘 핫산이요."
"그럼 네가 K_7 장치 자료를 군터에게서 받아 이놈한테 넘겨 주었나?"
"그렇소."
"장치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미 하마니에게 넘겨졌소."
그러자 저격총을 쥔 사내가 한걸음 다가섰다.
"한국여자에 대해서 말해라. 모리스."
그가 총구를 모리스의 이마에 붙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