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추적(5)
기사입력 1998년 04월 05일 15시 19분
술탄 하산 모스크 앞에서 택시를 내린 이준석은 곧 왼쪽의 좁은 길로 들어섰다.
오전 9시경이어서 도로에는 행인들과 차량이 들끓고 있었지만 미로처럼 만들어진 골목에는 간간이 베일을 감은 여자들만 지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십분쯤 골목길을 걷던 그가 멈춰선 곳은 이층 건물의 대문 앞이다. 그는 닫혀진 대문의 한쪽 기둥 옆에 몸을 붙이고 섰다.
뒤쪽 집안에서 아이들의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뿐 주위는 조용했다. 도로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주택가인 것이다.
그가 숨을 두어번 내뱉었을 때였다. 낮은 발자국 소리가 빠르게 들리더니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준석의 앞을 스치고 지나려는 순간이다. 와락 앞으로 나선 이준석이 사내의 한쪽 어깨를 잡았고 다음 순간 사내의 하반신이 번쩍 들리면서 뒤집혀졌다.
그 자세 그대로 앞쪽 담에 온 몸을 부딪친 사내가 주르르 미끌어져 머리부터 땅으로 떨어졌다.
이준석이 사내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넌 누구냐? 왜 나를 따라와?"
낮고 다부지게 영어로 물었지만 사내의 입에서는 커다란 아랍어가 비명처럼 쏟아졌다.
체격이 컸고 검은 얼굴에는 놀란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다. 이준석은 주 춤 거리며 사내의 멱살을 쥔 손을 풀었다.
그 순간이었다. 사내가 몸을 굽히면서 아픈 표정을 짓는것 같더니 허리춤에 꽂은 권총을 빼들었다.
자연스럽고 익숙한 동작이었다. 한 걸음쯤 떨어져 있던 이준석은 몸을 비틀었다.
다음 순간 요란한 총성이 골목을 울렸고 동시에 이준석의 구둣발 끝이 사내의 턱을 차올렸다.
뒷머리를 벽에 부딪친 사내가 다시 주르르 미끄러졌을 때였다.
"탕, 탕."
총성이 울리면서 총알이 담에 맞아 튀었다. 이를 악문 이준석은 반대쪽을 향해 달렸다.
사내들은 정태수를 미행했을 것이다. 골목을 돌고 또 돌아 전혀 위치를 알 수 없는 큰길로 나온 것은 그로부터 십분쯤 후 였다.
그는 마침 다가오는 택시에 올랐다.
"주와일라 문으로！ 10불！"
그러자 늙은 운전사가 머리를 저었다.
"20불."
"좋아！ 가자！"
고물택시는 달리는 차량들 사이로 날쌔게 끼어들었다. 뒤를 돌아본 이준석은 짧게 숨을 뱉었다.
추적자가 있는지 어쩐지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병신 같은 자식들！"
얼굴을 일그러뜨린 카심은 주먹으로 앞좌석을 세번이나 쳤다.
"다 잡은 것을 놓치다니 돼지 새끼들！"
길가에 주차시킨 차 안이었다. 앞좌석에 앉은 부하 두명은 겁에 질린듯 몸을 굳힌채 입도 열지 않았다.
이윽고 카심은 옆에 놓인 무전기를 들었다.
스위치를 켜자 곧 서두르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떻게 되었어?"
정보국장 무스타파였다.
카심은 침을 삼켰다.
"예. 국장님, 골목 안에서 놓쳤습니다."
"…."
"요원 하나가 잡았다가 그 놈한테 반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그쪽 도로를 봉쇄해라！ 어떻게든 그 놈을 잡아야돼！ 이 멍청한 놈들아！"
무스타파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울렸다.
"카심！ 네 놈들 국경지역 순찰대로 쫓겨나지 않으려면 정신 차려야 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