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 김희선-류시원 애잔한 대사 코끝 찡
기사입력 1998년 04월 05일 15시 19분
분당 신도시의 한 대형 할인매장 지하 창고.
바깥의 따사로운 봄 날씨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쌀쌀한 기운만이 주위를 감돈다. 여기저기서 짐을 내리는 잡음 사이로 배우들의 몇 마디 대사가 오고 간다.
"우리 그만 만나."
"아니, 결혼해."
극중 세준인 류시원의 대사를 듣는 김희선(세희역)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이를 지켜보던 김사현PD와 스태프들은 이미 슬픔에 흠뻑 취해있는 표정.
MBC TV 새미니시리즈 `세상 끝까지'(정유경 극본, 김사현 연출) 야외촬영현장의 첫 느낌은 차갑고 어수선했다. 하지만 이런 느낌도 잠시. 두 주인공의 떨리듯 흘러나오는 대사와 강렬한 눈빛은 이내 촬영장을 조용하게 만들었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관계자들에게 온기를 전해줬다.
"평범한 사람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려볼 생각입니다."
시류에 상관없이 잔잔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사랑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것이 김사현PD의 포부. 섬세한 연출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가느다란 음률 같은 사랑얘기에 관심이 쏠린다.
MBC에 처녀 출연하는 김희선의 달라진 모습도 눈에 띈다.
화장기 없는 얼굴, 질끈 동여 맨 긴 머리. 대사에는 톡톡 튀는 신세대의 개성 대신 한껏 여성스런 인고의 미가 배어있다.
"거친 세상을 곱게 살아가는 순수한 여자 역할이죠. 청승 떨지 않는 깔끔한 연기를 선보일 거예요."
풋풋한 신세대에서 생각이 깊고 성숙한 남성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류시원과 방탕하게 살아가는 재벌 2세로 나오는 김호진의 연기 대결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여기에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종수, 강성연, 김선아, 김유리 등 신세대 연기자들이 합세해 펼치는 여러 갈래의 사랑이야기는 극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킬 듯.
담당 이은규팀장은 "전체적으로 스피디한 스토리의 전개는 없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충분할 것"이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미니시리즈 원조 MBC'의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서태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