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돈의야구보기] 선수들의 엄청난 '이동거리'
기사입력 1998년 03월 24일 15시 21분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올시즌 목표에 대해 단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건강하게 시즌을 마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박찬호가 이같은 말을 하는 것은 바로 `이동과의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땅이 엄청나게 넓은 미국에서 원정경기를 해야 하는 박찬호가 올시즌 이동해야할 거리는 줄잡아 8만㎞나 된다.
지구를 두바퀴나 돌아야 하는 박찬호에게 몇승보다는 건강하게 마운드에 오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주로 비행기로 이동하는 박찬호와는 달리 주로 버스로 이동하는 국내 프로야구선수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프로야구선수들이 옮겨다니는 거리도 엄청나다.
다음달 11일 프로야구 98시즌이 개막되면 프로 8개구단 선수들이 버스로 다녀야되는 거리는 6만4천880㎞나 된다.
올시즌 페넌트 레이스 126게임중 63경기를 원정지에서 치러야 하는 프로야구선수들이 버스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6천400시간（버스가 시간당 100㎞를 달릴때）이 넘는다.
8개구단중 가장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구단은 롯데다.
롯데는 올시즌 9천700㎞를 이동하는데 다른구단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거리를 옮겨다녀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피로도는 물론이고 기름값도 가장 많이 든다고 불평이 대단하다.
가장 적게 이동하는 팀은 연고지가 충청도인 한화로 6천700㎞ 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롯데보다 무려 3천㎞를 덜 다니는 셈이다.
연고지가 전남인 해태는 9천50㎞로 두번째로 많이 이동해야하며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와 OB는 7천400㎞ 정도의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다.
사실 프로야구에서 `이동은 전력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로하지 않고 기분 좋게 이동하면 다음날 경기를 실력대로 치를수 있지만 만일 버스가 고장이 났다든지 아니면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 오랜 시간 차를 탔을 경우 다음날 경기력은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구단은 보다 안락한 버스를 마련하고 또 중요한 경기가 있을 경우 비행기를 타는 등 경기력 유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보다 2배 가까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일본도 선수들의 체력 유지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한 바 있는 주니치의 선동열이나 이종범이 올시즌 움직여야 할 거리는 1만7천㎞.
그러나 일본은 신칸센 열차로 주로 이동을 하는데 역이 야구장과 가까운 도심에 있고 여름철에도 강력한 체력훈련을 시켜 한국보다 피로가 덜하다는 것이 선동열의 말이다.
한국 프로야구선수들은 일본에 비해 적은 거리를 옮겨다니지만 이동 수단이 버스여서 피로도는 훨씬 더하다는 분석이다.
예년의 경우 주말 야간경기를 끝내고 이동을 할때 행락 차량과 맞물리면 버스에서 6∼7시간 이상을 소비해야 하는 일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8개구단과 KBO가 올시즌 월요일 경기를 하고 이동일을 화요일로 정한 것도 교통량이 많은 일요일 이동이 선수들의 체력 저하를 가져와 경기력까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국내 프로야구단의 전용버스도 상당히 발전해 왔다.
초창기에는 45인승짜리 전용버스를 이용했던 구단들은 요즘 27인승과 16인승의 첨단 버스를 특별 제작해 선수들이 이동중 좀더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왔다.
그러나 IMF 관리체제는 구단 버스 축소로 이어졌다.
각구단이 16인승짜리 3대로 하던 버스 운행을 27인승짜리 2대로 운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주로 선수들의 잠자리였던 이동 버스가 다소 불편해진 셈이다.
팬들에게 볼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새우잠을 자며 수천㎞의 장거리 이동을 마다않는 프로야구 선수들.
경기장에서 보내는 박수 한번이 그들의 피로를 씻는 청량제가 되지 않을까.
[부국장대우 야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