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 풍속사] (54)중세 유럽 목욕탕
기사입력 1998년 03월 17일 14시 42분
로마말기의 목욕탕은 음란방탕의 장소였다. 남녀혼탕이 대유행했다. 매춘부들은 탕에 들어가 손님을 유혹했다. 가정부인들도 거리낌없이 남자들 앞에서 여자노예들에게 몸을 씻기게 하였다. 억수로 좋은 `억수탕'이었다.
이같은 풍습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계속됐다. 특히 중세의 독일과 네덜란드 등지에서는 매춘업을 하는 목욕탕이 성업이었다.
독일에서는 대중목욕탕이 크게 유행했는데 퇴폐가 극에 달했다. 손님들은 목욕탕 안에 술상을 차려 먹고 마시기를 즐겼다. 트럼프같은 도박을 즐기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 공중목욕탕을 찾았다. 욕탕에는 마사지용 침대가 있었다. 손님이 침대에 누우면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걸친 안마사나 때밀이가 나타났다.
때밀이나 안마사는 몸을 파는 매춘부이기도 했다. 매춘부들은 남자손님들을 유혹해 탕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가 섹스를 제공했다. 목욕탕 주인들은 안마사와 때밀이 여자를 고용할 때 용모단정을 요구했다. 섹시한 여인을 고용해야 장사가 잘됐기 때문이다.
16세기 접어들어서는 매춘부들이 직접 나서 목욕탕을 매춘장소로 이용했다. 매춘부들은 맨몸에 온갖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남자들을 유혹했다.
독일의 풍속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는 "13세기부터 16세기초에 걸쳐 남녀혼탕은 취리히 5곳, 슈아이아 9곳, 울름 10곳, 바젤 11곳, 프랑크푸르트 15곳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매춘업소를 겸한 목욕탕은 빈 베를린 뉘른베르크 등의 도시에 무수히 있었다.
이렇게 목욕탕이 시간이 흐를수록 음란한 곳으로 돼가자 1550년에는 권력이 나서 "남녀 모두 아랫도리라도 가리도록 하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동풍이었다.
퇴폐 목욕탕을 일소한 것은 뜻밖에 흑사병이었다. 16세기 중엽부터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흑사병은 목욕탕 주인과 매춘부들을 몰아냈다. 사람들이 병에 전염될까봐 목욕탕 발길을 끊은 것이다. 독일인과 네덜란드인들을 `문명인'으로 만든 것은 이렇게 흑사병의 공로였다.
동양에도 이런 `억수탕'이 있었다. 일본의 경우 17세기 에도시대의 목욕탕에는 매춘부 노릇을 하는 목욕하녀가 있었다고 한다.
최근 증기탕에 이성（異性） 입욕보조자를 두는 것을 금지토록 한 공중위생법 시행규칙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김모씨 등 증기탕 입욕보조자 174명이 "이성 입욕보조금지로 재산상 손실과 함께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공중위생법 시행규칙 2조（나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해당 규칙조항은 증기탕내의 퇴폐행위를 근절하고 선량한 풍속을 유지하기 위해 이성 입욕보조자를 둘 수 없도록 제한한 것으로, 그 입법목적에 비춰볼 때 정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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