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10)

기사입력 1998년 03월 12일 14시 08분


사내의 이름은 압둘라였다. 그는 수염 투성이의 거인이었는데 두손으로 캔 주스를 움켜쥐고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준석의 호텔방 안이다. 파이즈 대신 압둘라를 일당 백불을 주고 고용한 것이다.

이준석이 앞자리에 앉자 그가 재촉하듯 말했다.

"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압둘라, 난 관광하러 온것이 아니오."

정색한 이준석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실종된 하무드를 찾고싶소. 그의 주소나 있는 곳을 알려주면 사례하겠소."

그는 탁자 위에 백불짜리 다섯장을 내려 놓았다.

"하무드는 당신의 동료였소. 날 도와주시오."

압둘라가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을 들었다.

"당신은 누구요?"

"난 실종된 한국여자의 약혼자가 되는 사람이오."

"난 모릅니다."

압둘라가 머리를 저었으나 일어서지는 않았다.

"난 아는게 아무것도 없소."

"동료의 주소도 모른단 말이오"

"그자는 카이로에서 왔단 말이오."

압둘라의 시선이 탁자 위의 돈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하고는 친하지도 않았고."

돈을 집어든 이준석이 압둘라의 셔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럼 아는 것만 말해 주시오. 아무것이나."

"파이즈하고 친했습니다."

"파이즈하고?"

"그렇소."

압둘라가 주머니에 든 달라를 다독여 깊게 넣었다.

"단짝 이었지요. 일 끝나면 둘이서 같이 지내는 때가 많았습니다."

"…."

"그리고…."

문득 말을 멈춘 압둘라가 입맛을 다셨으므로 이준석은 주머니에서 백불짜리 한장을 꺼내어 탁자 위에 놓았다.

"말해요. 압둘라."

"파이즈는 정보국에 끌려가 단단히 혼이 났지요. 하무드에 대해서 입을 열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다는 겁니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것 뿐이오."

그러고는 조금 미안한지 압둘라는 찌푸리며 웃었다.

"난 버스가 폭발하고나서 5분도 안되었을때 현장에 갔었습니다. 당신한테는 유감이지만 산 사람은 없었던것 같았소."

"사고 후에 하무드를 만났습니까?"

"파이즈가 만났습니다."

룩소르 호텔 721호실이다. 급해진 이준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맙소. 압둘라, 관광은 이것으로 끝냅시다."

이준석이 룩소르 호텔에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15분쯤 후인 오후 3시쯤이다.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린 그는 721호실로 다가가 섰다. 노크를 하자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대답하더니 문이 열렸다. 가운 차림의 서양인 사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오?"

"이곳에 일본인 여자가 없습니까?"

"일본여자?"

눈을 치켜떴던 사내가 머리를 돌리더니 소리쳤다.

"여보, 이리와."

"무슨 일예요?"

하면서 문쪽으로 나온 사람은 회색 머리칼의 육중한 서양여자였다.

어깨를 늘어뜨린 이준석의 앞에서 문이 세차게 닫혔다. 다시 그가 로비로 내려왔을 때였다.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으므로 그는 몸을 돌렸다. 건장한 체격의 이집트인 두명이 다가서 있었다.

"여권을 좀 보실까요?"

사내 하나가 정중히 물었으나 눈빛이 차거웠다. 그는 이제 손까지 내밀었다.

"어서. 미스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