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비화X파일] (1)가짜 고향친구
기사입력 1998년 03월 11일 14시 58분
고향 친구를 사칭해 순진한 주부들을 불러낸 뒤 돈과 몸을 빼앗은 남자가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전화번호부에서 `먹이감'을 물색해 10여명의 주부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남자의 범죄 행각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X편집자주〉
"나 누군 지 모르겠어?"
작년 11월말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주부 김정임씨（40．가명）는 뜻밖의 전화 한통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화를 건 상대가 다짜고짜 자신의 정체를 맞춰보라고 하는 것이다. 장난전화다 싶어 얼른 끊어버릴까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씨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저, 실례지만 누구신지."
"너무한다. 초등학교 때 단짝의 목소리도 몰라보다니. 섭섭한데."
"그럼 혹시 성철이?"
"그래. 이제야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구나."
오래살고 볼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의 이성 짝꿍이 졸업한 지 30년이 가까이 된 지금 이렇게 안부 전화를 걸어올 줄이야. 김씨는 설레임 반, 호기심 반으로 코흘리개 친구의 근황을 물었다. 마음은 이미 멀리 초등학교 시절 고향으로 가 있었다.
"서울에서 조그맣게 사업해."
"멋지다.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동창생 주소록 명부 복사한 게 있었어."
몇분간 안부를 물은 뒤 남자는 화제를 바꿨다.
"부탁이 하나 있어. 실은 그것 때문에 전화한거야."
"뭔데?"
"사업 때문에 내려왔다 서울 올라가는 길인데 논두렁에 차가 빠졌어. 견인비가 최소 10만원은 들텐데…. 접대하고 가는 길이라 현찰이 없어. 근처에 네가 산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전화했어. 돈 좀 갖고 나와주면 차 건져내고 바로 은행 24시간 현금인출기로 가서 돈 빼줄게. 부탁 좀 하자.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김씨는 시계를 들여다봤다. 남편의 퇴근 시각까지는 1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약속장소는 논두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한 초등학교 앞.
차가 있었기 때문에 10분여만에 닿을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멀리서 한 중년 남자가 달려왔다.
"성철이 찾아 오셨습니까? 저쪽 논두렁에서 차하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
그러나 30여분을 걸어 들어가도 논두렁에 빠진 차는 보이지 않았다. 김씨는 문득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는 지를 깨닫고 도망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은 뒤. 흉기를 들이대고 덤비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몸과 지갑에 있던 현금 47만원을 고스란히 넘겨준 뒤에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