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9)

기사입력 1998년 03월 11일 13시 46분


여자가 이준석을 향해 조금 머리를 숙였다.

"중국인이세요?"

그의 짧은 머리칼로 그렇게 짐작한 모양이다.

"난 한국인이오."

"그럼 북쪽."

"또 틀렸소. 남쪽이오."

"미안합니다."

다시 머리를 숙여보인 여자가 한걸음 다가와 섰다.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여러개 맺혀 있었다.

"저, 부탁이 있습니다만, 저기 여행사에 잠깐 다녀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자가 눈으로 가리킨 곳은 오리엔트 관광이다.

"여행사 직원 파이즈에게 손님이 룩소르 호텔 721호실에서 기다린다고만 전해 주시면 고맙겠는데요."

"왜 직접 가시지 않고, 전화해도 될텐데."

"사정이 있습니다."

여자가 재킷 주머니에서 100달러짜리 지폐 한장을 꺼내더니 내밀었다.

"사례비를 드리지요."

돈을 받은 이준석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정을 말해주면 해 드리지."

여자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가 멈췄다.

"우체국 안에 경찰이 아니, 정보요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들은 저를 감시하고 있어요."

"죄를 지었소?"

"도난당한 유물을 찾으려고."

"그렇다면 파이즈란 남자한테 살짝 말해줘야 겠군."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백불 더 내시오."

그러자 여자는 주머니에서 100달러짜리 한장 더 꺼내더니 손을 밑으로 뻗쳐 건넸다.

뒤쪽의 우체국 안을 잔뜩 경계하는 태도였다.

돈을 받은 이준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본에는 달러가 과연 많은 모양이오."

우체국 현관을 떠난 그는 곧 옆건물 이층의 여행사로 들어섰다. 열평쯤 되는 사무실에는 남녀직원 네명이 앉아 있었고 서양인 남자 두명이 상담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웃으며 그를 맞았다.

"관광 가이드가 필요 하십니까?"

"그렇소."

"일행은 몇분이나 되십니까?"

"나 혼자요."

그러자 퍼뜩 눈을 치켜 떴던 그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러시다면 전문지식을 갖춘 안내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테이블 위로 상반신을 굽힌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거기에다 아름다운 여자 안내원이면 더 좋겠지요?"

"나는 파이즈를 원하는데."

그러자 사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셔졌다.

"내가 파이즈 올시다. 제 이름을 누구한테서 들었습니까?"

"친구 한테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100달러를 받습니다. 물론 식사비 교통비는 별도지요."

"지금 나올 수 있소?"

시계를 내려다본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식사비 교통비 빼고 70달러 입니다."

"도대체 뭘 먹길래 자꾸 식사비를 외치는거야?"

이준석은 주머니에서 100달러짜리 지폐 한장을 꺼내 테이블 위로 던졌다.

조금전에 이름도 모르는 여자한테서 받은 돈이다.

상체를 굽힌 이준석도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은 인기가 좋은 모양이야. 손님이 룩소르 호텔 721호실에서 기다린다던데. 여자였어."

[계속]